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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여우 사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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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영국 템스강변 국회의사당 복도엔 1649년 국왕 찰스 1세 사형 판결문이 전시돼 있다. 누렇게 바랜 종이에 사형을 선고한 재판관인 의원들의 연대서명이 선명하다. 가장 먼저 서명한 대표가 '올리버 크롬웰'이다. 당시 크롬웰은 철기군(鐵騎軍)을 이끌고 의회로 진격해 반대파 의원들을 선별해 의사당 밖으로 쫓아냄으로써 전권을 장악했다. 판결문은 세계 민주주의의 시발점이 된 청교도 혁명의 순간을 담은 진본이다.

15일 "크롬웰 이래 두 번째 의사당 난입 사건"(노동당 스튜어트 벨 의원)이 터졌다. 355년 만의 대사건은 우스꽝스럽게도 여우사냥을 둘러싼 해프닝이었다. 여우사냥의 역사는 영국에 봉건제가 자리 잡은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잉글랜드 지역의 4분의 1은 왕의 사냥터였다. 왕의 사냥감으로 길러지는 사슴을 죽인 사람은 두 눈을 멀게 만드는 형벌을 받았다. 왕실 소유 사냥터가 아닌 지역은 모두 봉건 귀족의 사냥터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겐 여우가 가장 매력적인 사냥감이었다. 섬나라 영국에서 여우는 먹이사슬의 가장 윗고리에 자리 잡고 있다. 지금도 대략 50만 마리의 여우가 서울의 도둑고양이처럼 전국의 밤거리를 어슬렁거린다. 가축에 해를 입히기에 박멸의 명분도 좋다.

귀족 스포츠인 사냥은 곧 전쟁놀이다. 사냥꾼들은 18세기 기병대 장교 복장을 한 마스터의 구리나팔 소리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여우사냥용으로 개량한 폭스하운드(사냥개) 수십 마리가 보병처럼 여우를 쫓아 달린다. 말을 탄 사냥꾼들은 여우를 몰아 개떼에 휩싸여 물려 죽게 만든다. 여우꼬리는 행운의 상징으로 여성 사냥꾼에게 헌정된다. 가끔은 머리와 발도 기념품이 된다. 몸통은 폭스 하운드 몫이다. 그래서 전근대적인 동물학대란 비난을 받아왔다.

토니 블레어 총리는 1997년 집권하면서부터 여우사냥 금지를 공약했다. 마침내 하원에서 금지법안이 최종 표결에 부쳐지게 되자 이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난입한 것이다. 이미 두 차례나 하원을 통과했던 법안이 보수적인 상원에서 비토당하는 과정에서 7년의 세월이 흘렀다. 유럽통합법과 같은 굵직한 현안에 비하자면 사소한 법안임에도 불구하고 전 영국이 떠들썩하다. 변화에 신중하고 토론에 진지하기 때문이다.

오병상 런던특파원

오병상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