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이회창 총재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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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18일 여의도 국회 총재실에서 총선결과의 평가, 양당구도.영수회담에 대한 정국관리 구상, 남북정상회담 등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 4.13총선은 우리 헌정(憲政)사상 첫 '여소야대 양당구도' 를 낳았고 야당으로선 기분좋은 기록입니다. 먼저 총선결과를 평가해주시죠.

"양당구도를 이뤄낸 데 대해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총선을 치르는 동안 일여다야(一與多野)의 형태로 간다면 정치상황이 바람직하지 않을 것으로 봤습니다.

선거의 본질을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내지 심판으로 우리가 규정했는데 국민이 이를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매우 뜻깊습니다. "

- 한나라당이 양적인 면에서 제1당의 성과를 거뒀지만 질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영남 싹쓸이가 지역감정의 수혜라는 지적은 어떻게 보십니까.

"내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영남 싹쓸이는 김대중 정권에 대한 심판, 다시말해 현 정권의 국정운영에 대한 반감의 폭발이라고 봅니다.그 감정은 반드시 영남이란 지역 때문만은 아닙니다. "

- 현 정권에 대한 심판은 반(反)DJ성향에 따른 것이지 李총재에 대한 지지표는 아니라는, 李총재 입장에선 섭섭한 분석도 있는데요.

"(웃으며)내가 보기엔 반 DJ감정의 저변에는 야당도 잘하라는 편달의 의미와 한나라당을 키워주고 견제세력을 만들자는 애정도 깃들여 있다고 봅니다. "

- 한나라당 공천파동때 사당화(私黨化)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李총재의 공천 대모험이 성과를 거뒀는데 김윤환.이기택씨 등의 퇴조을 예상했습니까.

"그 분들에 대해 개인적 감정으로 배제하거나 퇴출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번 공천에서 제가 뜻한 바는 새로운 정치분위기와 새로운 정치 주체세력화였는데 결과적으로 선거라는 국민의 선택과 심판을 통해 그 목적에 한발 다가섰다고 봅니다. "

- 총재로서는 처음 치른 총선인데요.

"초반 공천후유증으로 민국당이 생기고 자민련의 야당선언으로 일여다야의 모양이 되고 공격포인트가 주로 저나 우리 당에 집중되고 할 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다행히 국민께서 절묘한 선택을 해주셨습니다.

대통령과 집권당이 가진 힘으로 만들어낸 선거에 유리한 국면과 공격자료들이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때는 안도했습니다. 국민도 정도(正道)로 가는 방법이 아니면 간파한다고 느꼈습니다.

다만 선거가 매우 혼탁하고 금권.관권이 개입됐는데 대통령과 정부는 다시 한번 돌이켜보고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철저한 반성과 함께 진실을 가리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

- 총선연대의 활동이라든지 검증의 정치시대가 됐습니다.

"새로운 시도이고 현상입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절차의 정의' 라는 측면도 중요합니다. 낙선운동을 하면서 법을 무시하는 사례가 많았는데 시민단체라고 선거법을 짓밟고 위반한다면 선거의 룰과 궤도가 없어집니다. "

- 야대 양당구도의 막강한 야당총재가 됐다는 평가만큼 정국안정의 책임도 큰데 야당의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통령 임기 전반기에 우리 당이 해온 일에 대한 비판을 겸허히 수용합니다. 다만 야당이 왜 뒷다리 잡는 것처럼 비쳐질 수밖에 없는지는 이해해줘야 합니다.

야당 의견이 반영되고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처우받고 건전한 비판과 협조가 가능하다면 왜 뒷다리를 잡겠습니까. 대통령과 여당이 여야관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줬으면 합니다.

우리당도 야당이 얻은 위치와 책임에 대해선 깊게 생각하겠습니다. 대통령이 어제(17일)담화문에서 여야관계에 대한 견해를 표명했는데 그게 진솔하고 진지한 것이길 바랍니다. "

- 국민의 관심은 영수회담에 쏠려 있는데요. 한나라당은 원칙적으로 수용한다면서도 인위적 정계개편과 표적수사 등을 거론했는데 이런 전제없이 대통령을 만날 생각은 없습니까.

"조건을 달아 얘기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정국을 풀기 위해 여야 영수가 만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국면전환용 사진이나 찍는 영수회담은 필요없다는 생각입니다. 가령 과거처럼 여소야대 구도를 깨기 위해 인위적 정계개편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

- 이번 총선으로 청와대와 국회가 국정운영의 두 축이 되는 건 한국 정치의 거대한 실험입니다. 이런 구도에 대한 구상은 무엇입니까.

"국회가 제 기능을 찾는 것은 대통령과 집권당의 발상 전환을 전제로 합니다. 현 여소야대 상황을 수용하고 국회기능을 존중하고 국회 협조를 구하며 가는 발상의 전환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대화 타협의 정치도, 상생(相生)의 정치도 공염불이 되고 맙니다. 과거 여소야대 국정 운영의 어려움을 푸는 길은 역대 정권도 그랬고 현 정권도 그랬지만 구도 자체를 깨는 것이었습니다.

정치평론가들조차 레임덕 방지를 위해 여소야대를 깨는 걸 당연한 정치상식처럼 얘기하는데 이런 상식은 허물어져야 합니다. "

- 남북정상회담 같은 국가대사는 밀어주는 초당적 자세가 필요한데 이번 총선 때 그렇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 부분은 정확히 써주세요. 우리 당도 남북정상회담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분명한 원칙과 방향이 서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동안 북한측이 정상회담을 거부하며 내세운 원칙과 조건은 세가지인데 모두 우리 국가안보에 위협을 주는 내용들입니다.

국가보안법 폐지, 외세와의 공조 폐기, 그리고 친북인사 활동보장인데 남북정상회담에 북한이 응했다고 해서 '옳다, 좋다' 라고 말할 수 없는 건 이런 것들이 어떻게 타협됐나 알아야겠다는 생각에서입니다.

그런 점에서 회담에서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원칙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게 우리 당의 주장입니다.

첫째는 대한민국의 정체성(正體性)양보는 있을 수 없다는 점이고, 둘째는 상호주의 원칙을 지키는 것입니다. 셋째는 국민세금이 들어가는 경제지원과 대규모 협력 등은 국민과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

- 총선에서 JP의 패배를 어떻게 보십니까.

"DJP공조로 인해 이뤄왔던 정계구도랄까 이런 데 대한 염증이라고 봅니다. 앞으로 김종필씨가 정치적 역할과 역량을 발휘할 지 여부는 쉽게 예측하지 못하지만 국민들은 DJP연합에 의한 정권창출은 인정했지만 이후 국정운영 상황에 대해서 극명하게 노(NO)라고 평가한 것이라고 봅니다."

- 앞으로 민국당.한국신당을 싸안을 생각은 없나요.

"DJP 재결합 말도 나오지만 자민련쪽에서 대국민 신의의 문제가 생깁니다. 이는 국민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우리 당이 견지한 입장과 노선에 동조하면서 이 정권의 장기집권 구상에 반대하는 세력과는 얼마든지 공조하고 연대하는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 현행 5년단임 헌법은 87년 노태우 대통령과 3金씨의 합작품입니다. 그런데 5년(대통령)과 4년(국회의원)의 임기 차이에서 오는 문제점이 적지 않습니다. 대통령 4년 중임제가 대안이라는 여론도 있는데요.

"헌법에 대한 손질이 필요하다는 여론도 있지만 내각제에 대한 우려 때문에 헌법을 손질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제와 내각제 가부간에 개헌의 시기가 온다면 중임제 개헌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봅니다. "

- 지역감정 치유가 한국정치의 중요 화두로 떠올랐는데요.

"대통령이나 여당은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의 심판에 따라 표를 얻는다는 생각을 가져야 하고, 야당도 정권이나 여당의 성적을 분석 비판하고 정치적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번에 한 영남인사가 영남권 싹쓸이에 대해 '金대통령의 지역편중인사가 중요한 몫을 했다' 고 했는데 이런 것들은 오히려 선거에서 지역주의가 얼마나 역기능을 가져오는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

- 총선결과로 현재로선 대권가도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평가입니다. 어떻습니까.

"대통령 임기가 아직 후반을 남겨놓은 상황이고 해서 바로 대권정국이라고 보진 않습니다. 좀더 착실하게 총선결과를 평가 분석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풀어가면 앞으로 대선에 좋은 자산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

-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 정비구상은 섰습니까.

"공천과 총선결과에 대해 재신임을 묻겠다고 약속해 그 절차를 어떤 식으로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당대회 또는 전국위원회 개최 등 두 가지 형태가 있을 수 있습니다. "

- 3金의 총선과 李총재의 총선이 다른 점은 뭐라고 보십니까.

"첫째는 돈 없이 치렀습니다. 3金정치아래서와 같이 스스로 지역할거나 지역연고를 전략무기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자부합니다. "

정리〓최상연.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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