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역전·재역전…개표방송 밤샘 시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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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4일 새벽까지 계속된 16대 총선 개표 결과 전국 곳곳에서 여야 후보간에 엎치락 뒤치락 박빙의 접전이 벌어져 각 정당과 후보들은 일희일비(一喜一悲)하며 밤을 밝혔다.

특히 지난 총선까지만 해도 허용되지 않던 출구조사 결과가 오후 6시 3대 방송사에 의해 일제히 발표되자 각 후보 진영에선 환호와 탄식이 교차됐다.

조사 결과 서울 마포을.동작갑과 경기 분당갑.을 등 일부 지역에서 방송사간 결과가 다르게 나온데다 서울.경기.인천에서만 20여곳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 후보가 3% 이내에서 근소한 게임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나자 해당 후보들은 개표 상황을 숨을 죽이며 지켜봤다.

또 당선권에서 멀어진 것으로 나타난 후보들도 "지난 총선 때 방송사 예측보도가 30여 곳이나 틀렸다" 며 희망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개표방송을 시청했다.

이날 TV개표 방송은 경합지역이 전국적으로 40여곳에 달해 수시로 순위가 뒤바뀌는 등 자정까지 긴박함이 이어졌다.

서울역과 강남고속버스터미널 대합실에 비치된 대형 TV 앞에도 여행객과 행인들이 둘러서 개표상황의 역전.재역전의 드라마를 지켜봤다.

이에 앞서 포근한 날씨속에 각 투표소에는 새 천년을 이끌어 갈 선량(選良)을 뽑으려는 민의(民意)의 행렬이 이어졌다.

탈북자.비전향 장기수와 1백18세의 할머니, 상중(喪中)인 유가족, 그리고 섬 주민과 산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까지 '4년간의 머슴' 을 뽑는 선거 축제에 참가했다.

대부분 가벼운 평상복 차림을 한 유권자들은 집 근처에 지정된 투표소를 찾아 마음속에 새겨둔 후보가 당선되기를 기대하며 귀중한 한표를 투표함에 넣었다.

유권자들은 대부분 '신선한 정치' 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주부 金성은(30.서울 강남구 청담동)씨는 "이 표 한장으로 올해 태어날 아기에게 밝은 미래를 물려주고 싶다" 고 말했다.

처음 투표권을 행사하는 대학생 권태훈(20.서울대 정치학과)군은 "별로 찍을 사람이 없어 투표를 포기할까 했지만 시민단체의 열성적 활동을 보고 차선의 후보라도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 소감을 밝혔다.

투표과정에선 큰 소란은 없었지만 부산.대구 등 일부 지역에서 선관위 직원의 착오로 위원장 날인이 안된 투표용지가 발견되고 동명이인의 투표용지에 투표가 이뤄지는 등 작은 소동이 잇따랐다.

또 충북 음성군 원남 제2투표소에서 투표하려던 成모(35)씨가 자신이 사기죄로 집행유예형을 받아 선거권이 없는 것으로 돼 있는 사실을 확인, 행정상의 오류를 주장하며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다.

중앙선관위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안내문이 제대로 부착돼 있지 않아 투표소를 찾는 데 너무나 불편했다' '장애인과 노인을 생각해 1층에 투표소를 설치해야 했다' 는 등 항의가 잇따랐다.

갑호비상 근무체제에 돌입한 경찰은 이날 전국 투표소마다 경찰관 2명씩을 배치, 투표소 주변의 질서문란 행위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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