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치불신만 더 키운 총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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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6대 총선은 최근 어느 선거보다 혼탁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어 그 후유증 또한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록으로 봐도 선관위가 2천8백여건의 선거법 위반 행위를 적발했는데 이것은 15대 때의 4배를 넘는다.

이처럼 선거가 과열.혼탁하게 된 배경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총선 초반에 시민단체가 나서 낙천.낙선운동을 벌이고 개정 선거법에 따라 후보의 병역.납세.전과기록 등이 공개되면서 후보 검증자료가 많이 제공돼 선거운동이 마치 인물 검증 운동처럼 변질됐다.

때문에 선거전 초기에 제기됐던 김대중(金大中)정부의 중간평가 등 실질적인 이슈들은 그 속에 묻혀버렸다.

이에 따라 후보들은 그런 자료들을 둘러싼 흑색선전과 비방전에 선거운동의 대부분을 소모해 버렸으며 정책 대결보다 지역감정에 편승하려는 구태의연한 선거운동에 매달려 정치불신을 가중시키는 꼴이 됐다.

김대중 정부가 원내 다수세력 확보에 너무 집착해 선심 공세에 병역문제 등을 들고 나오는가 하면 선거 막판에 남북 정상회담까지 끌어내는 등 행정적인 이점을 최대한 동원함으로써 선거전을 더 가파르게 몰아갔다는 사실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이로 인해 관권선거의 의혹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으며, 더욱이 박빙승부를 벌인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는 여당 후보 중심으로 많은 금전이 살포됐다는 금권선거 시비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선거전이 살벌했던 만큼 선거 후유증도 클 것이다. 각 당이 서로 물고물리는 고소.고발로 나가면 수많은 당선무효 소송이 예상되며, 특히 여권이 정계 개편을 노려 15대 선거 직후처럼 이를 정치적으로 왜곡 이용할 경우는 심각한 사태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야당이 부정선거의 국정조사를 고집할 경우 정국이 장기간 경색되는 상황도 예상된다.

우리는 각 정당이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극한 대결과 금권.관권의 개입을 방지할 방안들을 진지하게 강구하고 선거 후유증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노력을 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거사범은 신속하고 엄정하게 처리하되 그 과정에서 정치적인 왜곡의 의혹을 조금이라도 받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번 선거과정에서도 드러났듯 후보 검증자료의 공개는 아직 많은 보완을 필요로 한다. 선거법의 후보 검증조항을 보완하고 선거운동의 규제조항도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하며 선관위의 권한을 대폭 보강하는 작업이 서둘러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번 선거 결과는 각 정당에 대해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어느 당도 선거운동 과정에서 개선된 선거운동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특히 지역감정의 벽을 넘지 못했다. 투표율 저조도 정치에 대한 불신의 증좌다.

각 정당은 자신들의 한계를 겸허하게 반성하고 구시대적인 발상과 인맥을 청산해 가는 내부정비를 시작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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