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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지원금 위해 '팔레스타인 방식'참고될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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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남북 경협 활성화를 위한 막대한 자금은 어떤 방식으로 조달할 수 있을까.

앞으로 경협이 본 궤도에 오르면 국내 자금으론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국제금융기구나 외국으로부터 많은 자금을 유치하는 일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와 관련, 세계은행이 팔레스타인을 지원했던 방식을 원용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연구소 등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세계은행은 팔레스타인이 정치적인 문제로 국제통화기금(IMF)등에 가입할 수 없게 되자 1993년부터 미국.영국 등 26개국으로부터 2억9천만달러의 기금을 출연받아 이를 직접 관리하면서 주택건설.수로공사.교육 및 보건사업 등을 벌여왔다.

팔레스타인 방식을 도입할 경우 북한이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하지 않아도 한국.미국.일본.중국 등으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또 세계은행 등이 자금을 위탁 관리하면 북한이 지원금을 원래 사업 목적 이외에 전용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장영수 연구위원은 "현실적으로 북한이 아시아개발은행(ADB)등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릴 전망" 이라며 "따라서 팔레스타인 방식을 도입하면 북한이 많은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을 것" 이라고 설명했다.

1년여 전부터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장 연구위원은 만약 팔레스타인 방식을 도입할 경우 ADB가 지원금을 관리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도 "북한이 ADB 준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는 입장을 밝힌 바 있어 주목된다.

이에 대해 재정경제부 고위 관계자는 "남북 경협과 관련해 구체적인 자금조달 방안을 거론하기는 아직 이르다" 면서 "팔레스타인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으나 정부는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있다" 고 말했다.

그러나 재경부의 또다른 관계자는 "6월 중순으로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에서 경협과 관련해 구체적인 합의가 도출되면 자금조달 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를 것이고, 이 경우 팔레스타인 방식이 유력한 방안이 될 것" 이라고 내다봤다.

설사 정부가 팔레스타인 방식을 도입하기로 방침을 정한다 해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미국의 찬성을 이끌어내야 한다. 미국이 반대할 경우 국제금융기구를 통한 자금 조달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정부 관계자들은 말한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 정책과 관련해 강경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공화당의 조지 부시 후보가 당선될 경우 팔레스타인 방식을 통한 자금조달은 어려워질 수도 있다" 고 내다봤다.

또 북한이 응할지도 미지수다. 자금을 지원받게 되면 각종 사업에 대해 감사에 가까운 감독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북한이 개방과 개혁을 가속화하는 데 이 방식이 가장 유리한 점을 감안할 때 거부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있다. 안 연구위원은 "북한이 각종 개발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를 맞았다" 면서 "북한도 엄청난 자금을 유치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것" 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ADB.IMF.세계은행 등의 협조를 구하는 일도 중요한 과제다. 특히 ADB는 팔레스타인 방식으로 비회원국에 자금을 지원한 적이 없어 유보적인 자세를 보일 가능성도 있다.

한편 정부는 남북 경협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선 북한이 국제금융기구에 조속히 가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앞으로 ADB.IMF 회원국의 협조를 당부할 방침이다.

박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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