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김규태 '나무같은 선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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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나무도 성질이 따로 있다

나무를 톱으로 토막내었다고 해서

영 죽는 것이 아니다

기둥 하나를 세우더라도 그렇다

남쪽을 보고 자란 나무는

남쪽을 향하게 세워야만

뒤틀리지 않는다

나무만 그런 게 아니다

선비도 그런 성질을, 그런 심술을 지닌

나무와 같다

꺾이고 짓밟히어도 죽지 않는 선비같은 나무

나무같은 선비가 있는 세상

- 김규태(66) '나무같은 선비' 중

나무는 정직하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꽃피우고 여름이면 열매맺고 가을이면 거둔다. 계절에 순응하면서도 제 몫을 지킬 줄 아는 나무는 죽어서도 타고난 본성을 버리지 않는다. 이 시는 생각이 없는 나무를 생각이 있는 선비에 빗대고 있다. 흙탕물을 일으키는 선거판을 보며 이 시대의 선비란 어떤 사람일까를 떠올려 본다. 저 몹쓸 황사바람을 막아줄 나무같은 선비가 있는 세상은 시에서나 만나는 것인지?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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