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유권자 총선투어] '표밭 탐험' 좌담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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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우리 선거는 혼탁과 구태의 연속인가. 선거에서 희망을 찾을 수는 없는가. 선거운동에 대한 실망의 소리가 높다.

중앙일보는 4.13총선을 앞두고 우리 선거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보기 위해 젊은 유권자 5명을 선정, 지난 5일부터 8일까지 4일간 전국투어를 실시했다.

예민한 정치적 감수성과 건강한 비판의식을 갖춘 젊은 유권자 투어팀은 전국 총선현장을 누비며 후보와 유권자 사이를 깊숙이 탐험한 후 9일 본사에 모여 토론회를 가졌다.

▶사회=뜨끈뜨끈한 경험을 마치고 지금 막 돌아왔는데 먼저,우리 유권자들은 선거를 무엇으로 받아들이고 있나요.

▶김자현=농촌으로 갈수록 축제 분위기였어요.경북 성주군의 합동연설회에 갔는데 대략 3분의 2정도의 청중은 자발적으로 모여든 사람들이었어요.일종의 마을잔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김윤철=부산의 한 여당후보 정당연설회에는 3백여명의 청중 가운데 절반이 동원되지 않은 지역주민들이었고 주위 건물의 옥상에서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강재연=서울에서도 자발적 청중이 무시못할 비율을 차지했어요.합동연설회장에서는 대체로 연단 앞쪽에 앉은 사람은 동원된 청중이지만 뒤쪽에 서있는 사람은 자발적으로 온 사람들이지요.전주의 한 후보 운동원은 “선거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공개적으로 토론을 벌이는 축제의 장(場)”이라고 정의했는데 많은 유권자들이 동의했어요.

▶원숙현=서울의 한 선거구에서 야당후보를 돕는 대학생 자원봉사자를 만났어요.사실은 돈받고 춤추고 노래하면서 유권자들의 눈길을 끄는 일을 한다고 했어요.재미있는 것은 합동유세장에서 비교해 보니 다른 후보가 더 낫다는 생각이 들어 그를 찍겠다는 거예요.그러면서도 돈을 벌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돼 즐겁고 행복하다고 했어요.

▶사회=후보들은 어땠어요.

▶김자현=주로 대구·경북 지역을 다녔는데 젊은 후보들이 승패를 떠나 페어플레이 하는 모습이 보기가 좋더군요.이들은 합동연설회에서 자신의 차례가 끝나도 다른 후보들의 연설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더군요.반면 이 지역에서 우세한 정당의 후보자들은 일찌감치 자리를 떠나 청중들로부터“00당 후보는 어디갔느냐”는 비난을 받았어요.

▶윤범기=원주에서는 다른 후보의 선거운동원끼리 마주치면 서로“열심히 하십시오”라고 격려했고 제천에서는 민주당,한나라당 후보가 커피를 함께 마시면서 같이 담소하는 정겨운 모습도 보았습니다.후보들은“선거분위기가 과거보다 좋아졌는데 왜 과열·혼탁인 부분만 강조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표시하더군요.언론이 선거현장의 희망적인 분위기도 전달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강재연=후보들의 자세가 생각보다 유연한 데는 유권자들의 비판적인 시선도 작용하는 것 같았어요.서울의 한 합동유세장에서는 모 정당 후보가 자신에게 주어진 25분을 모두 다른 후보의 인신공격에 사용하자 부인과 함께 온 40대 남자는“자기 할일이나 똑바로 하지”라며 못마땅해 하더군요.

▶사회=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구태(舊態)도 만만치 않았을텐데요.

▶윤범기=맞아요.7일 오후 천안역의 모 정당 집회에서는 지역주민을 놓고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장면을 목격했어요.그러자 동원된 군중들이 박수를 쳤고 주민들도 덩달아 호응하는 모습을 보았어요.

▶원숙현=수도권의 한 지역에서는 후보의 운동원으로 한 달에 몇번만 뛰면 1백만∼2백만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얘기가 나돌고 있어요.

▶윤범기=아직도 후보들이 국회의원직을 일종의 지역민원 해결사로 생각하고 유권자들에게 접근하는 경향도 보입니다.국가 전체를 보면서 한국사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텐데.

▶사회=젊은 유권자들의 참여도는 어떻던가요.

▶김자현=유세현장에서 젊은 유권자들을 보기가 어려웠어요.젊은 유권자는 우리 정치문화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고 있어요.실제로 제가 유세를 지켜봐도 후보가 뭘 말하고자 하는 건지,공약에 어떤 차별성이 있는지 모르겠더군요.

▶원숙현=대학로에서 시민단체가 유권자들을 상대로 서약운동을 하는 것을 지켜봤는데 여대생들은‘반드시 투표해야 한다’는 대목을 보여주자 발길을 돌려버리더군요.

▶강재연=젊은 유권자들을 끌어들이려면 유세가 이들을 아우를 수 있는 문화축제가 돼야 합니

다.서울의 한 후보는 연설도중 병역면제 의혹을 해명하기 위해 발가락이 휘었다며 양말을 벗더군요.전주의 한 후보는 수의를 입고 다니면서“정치는 죽었다”고 선언하더군요.이런 건 너무 살벌한 것 같아요.

▶윤범기=젊은 유권자들이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것은 기존 정당들이 젊은 세대의 다양한 정치적 감수성을 끌어안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사이버 공간을 이용한 선거운동은 어떤 호응을 받고 있나요.

▶강재연=후보들이 경쟁적으로 홈페이지를 만들었지만 유권자들을 끌어들일 만한 이벤트적 요소가 적어 방문객이 거의 없고 운영도 제대로 안되더군요.

▶윤범기=그래도 젊은 후보나 후발주자들은 직접 홈페이지의 토론에 참가하지만,거물 후보들은 만들어만 놓고 참여하지는 않아 비난의 글이 많이 올라옵니다.

▶김자현=인터넷을 아는 20대는 정치에 무관심하고 40,50대는 인터넷을 몰라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지역주의 바람이 거센데,이를 거부하려는 몸짓은 없던가요.

▶강재연=호남지역의 한 택시운전사는“이제 우리 지역에서 대통령도 냈으니 다른 사람을 뽑아야겠다”고 하더군요.

▶김자현=영남지방에서는“당보다는 인물을 보고 뽑겠다”는 사람들을 그래도 좀 만났어요.젊은 사람들의 경우“민주당 후보라도 괜찮으면 찍겠다”는 의견이 전보다 많아졌다고 해요.

▶사회=시민단체의 낙선운동에 대해선 어떤 반응이던가요.

▶윤범기=강원도의 한 지역에서는 총선연대 회원 20여명이 한 후보에 대해 집중적인 낙선운동을 벌였는데 유권자들은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더군요.

▶강재연=호남에서도 낙선운동자들의 피케팅에 대해 유권자들은“어차피 다 아는데 뭘 그러느냐”는 반응을 보였어요.

▶김윤철=부산의 한 지역구 합동연설회에서는 후보자들이 상대후보가 낙선대상자라는 사실을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더군요.

▶윤범기=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반응과는 달리 낙선운동은 유권자들에게 상당히 파고 들었다고 봐요.제천에서는 낙선대상자도 없지만 상당수 유권자들이 이를 지지하는 서명운동에 참가하고 있었어요.

▶사회=총선투어를 마친 소감을 한마다씩 한다면.

▶원숙현=솔직히 중앙일보가 마련한 총선투어에 참가하기 전에는 후보를 홍보하는 우편물도 읽어 보지 않고 버렸는데 이제는 달라졌습니다.꼭 투표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정치를 비난만 하는 유권자들에게 꼭 한번 유세장에 가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김자현=현장을 직접 한번 가보면 느낌이 확 달라집니다.앞으로 수많은 투표를 하게 될텐데 첫 걸음부터 좋은 선택을 위해 한번이라도 유세장을 찾을 것을 주위의 친구들에게 권하겠습니다.

▶강재연=공약을 보고 투표하려고 했는데 뚜렷한 차별성을 발견하지는 못했어요.결국 낙선대상자를 떨어뜨린다는 원칙을 갖고 투표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윤범기=동감입니다.

▶김윤철=친구들과 이런 총선투어 프로그램의 체험을 공유한다면 투표욕구를 크게 높일 것 같습니다.

이하경 차장

<참가자>

▶김윤철(29.서강대 정치학 박사과정)

▶강재연(26.여.테크노필 커뮤니케이션 팀장)

▶윤범기(22.서울대 정치학 4년)

▶원숙현(21.여.단국대 연극영화학 3년.KBS '생방송 좋은 아침입니다' 리포터)

▶김자현(20.여.고려대 영어교육학 2년)

▶사회〓이하경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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