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 뭘, 어떻게 바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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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더러운 부패정치뿐이야/낡은 지역감정뿐이야/… 이젠 바꿀거야/유권자의 심판뿐이야 워~/바꿔 바꿔 모든 걸 다 바꿔" - . 이 땅의 선거판과 정치를 확 바꿔놓자는 총선시민연대의 로고송 '바꿔' 가 어느새 공허하게 들린다.

많은 국민들의 박수속에 뭔가 달라지리라는 희망을 심은 것도 잠시. 낙천운동 대상자들이 대거 공천을 받아 1차로 '쪽 팔리고' , 낙선운동차 유세장에 나갔다가 할 말은 커녕 피켓마저 빼앗기고 밀려나기 일쑤다. '바꾸긴 뭘 바꿔' 라는 등뒤의 핀잔이 따갑다.

선거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지만 후보자도, 정당도, 내건 공약도 '그 나물에 그 밥' , 뭘 어떻게 바꾸자는 것인지 유권자들은 곤혹스럽다.

모든 것이 다 바뀌어도 정치판과 선거판만은 바뀌는 것이 없다. 바꿀 대안(代案)이 없는 선택권의 상실, 이는 곧 우리 정치의 비극이다.

4.13총선이 갖는 '바꿔 바꿔' 의 의미는 세가지로 요약된다. 한국정치의 고질적 병폐인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계기로 삼자는 것이 그 첫째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판세로 미뤄 지역대결 구도는 도리어 심화하고 고착화하는 경향이다.

'사람은 좋은데 당(黨)이 틀렸다' '무소속에 표찍으면 DJ에 대한 배신이다' 는 식의 싹쓸이 논리로 지역색(色)을 노골적으로 자극한다. 인물과 정책중심의 후보검증바람이 거세어도 지역감정의 두꺼운 벽 앞에선 전혀 맥을 못춘다.

둘째는 사당(私黨)정치의 극복이다. 1인(一人)보스정치를 청산하고, 전근대적.반민주적 정당체제를 깨뜨려 민주적 상향식 공천을 제도화하는 일이다.

이 역시 구호에 그치고 말았다. '3金정치 종식' 을 주창하는 야당마저 '돈공천' '밀실공천' 의 구태(舊態)를 닮아가 더 큰 실망을 안겼다. 선거혁명을 부르짖는 시민단체들의 낙천.낙선운동이 '미운털 박힌 자' 들의 퇴출에 이용되는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

셋째, 깨끗한 정치와 정책대결풍토의 확립이다. 정치개혁의 선결(先決)요건인 정치자금문제는 지금도 미궁이다.

이 마당에 '전국구 및 공천장사' 는 불가피하다고 치자. 모처럼 내건 정책대결이 더할 수 없이 실망스럽다. '공약이나 정책을 보고 찍어라' 지만 보고 찍을만한 제대로 된 공약과 정책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

모든 정치는 '지역적(local)' 이라고 했다. 많은 것이 지역구 이해관계에 좌우되는 국회의원선거가 특히 그렇다.

따라서 지역구 단위의 의원선거에서 국가적 정책대결을 주문함은 한계가 있다. 야당이 마음먹고 이번 총선을 현정권에 대한 중간평가로 의미를 격상시키고 전국 단위의 정책대결로 현정부의 '실정' (失政)을 이슈화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정당간 정책대결은 먼저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잘못은 비판하면서 나름대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특히 경제정책은 항상 양면성을 갖는다. 여야가 각기 어느 한쪽만 보고 의미를 과장하거나 비판만 일삼으면 경제이슈는 '정치화' 한다.

경제논리를 떠난 경제정책의 정치화 만큼 경제에 위험한 것도 없다. 건설적 대안 없는 정치공방은 문제해결보다 혼란을 가중시키고 계급투쟁적 의식조장에다 국수주의적 포퓰리즘으로 몰아간다. 뭘 어떻게 바꾸자는 각론과 선택이 없는 상황에서 유권자들이 뭘 바꿀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고 지레 절망은 이르다. 20.30대 유권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유세청중이 격감하면서 사이버 선거운동이 각광받는 등 선거양태도 달라지고 있다. 인구구성에다 글로벌화.정보화로 모든 것이 달라지는 데 정치만 언제까지 예외일 수는 없다.

지역구도 타파와 후보검증운동이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계란으로 바위치는 자세로 지역벽에 부단히 도전하고, 다양한 후보검증운동으로 적어도 '국회의원은 아무나 돼서는 안되고, 정말 국회의원되기 힘들다' 는 것을 이번에 보여줘야 한다.

특히 20.30대 유권자들의 역할은 막중하다. 투표하고 안하고는 개개인의 자유지만 귀하들의 기권이 결과적으로 지역주의와 낡은 정치의 수명연장만 돕게 된다는 점은 깊이 헤아려야 한다.

변상근<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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