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오지서 인술펴기 19년 이기섭 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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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대학병원 원장을 그만두고 낙향한 노의사가 19년째 산간오지를 찾아다니며 인술을 베풀고 있다.

금년이 미수(米壽)인 이기섭(李基燮.88.강원도 속초시 동명동)박사.李박사는 4.19 등 정치 격랑에 휩싸이는 게 싫어 1961년 이화여대부속병원 원장을 그만두고 속초로 낙향했다.

그뒤 속초시내 중앙동 시장입구에서 개업한 외과의원과 속초보건소.속초의료원을 거치며 환자를 돌봤다.

李박사가 무의촌 의료봉사 활동을 시작한 것은 속초의료원을 그만둔 82년부터. 젊은 시절 오지마을 진료활동에 나섰다가 약 한번 써보지 못하고 숨을 거둔 사람을 목격한 이후 다짐했던 의료봉사를 실천하기 위해서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李박사는 매주 목요일이면 어김 없이 왕진가방을 챙겨들고 집을 나선다.

설악산 자락에 파묻혀 있는 양양지역 대표적 오지마을인 서면의 서림리와 황이리.갈천리.영덕리 등 4개 마을이 요즘 그의 '단골' 왕진 지역. ' 이곳 1백80가구 6백여명의 주민 가운데 李박사의 진료를 받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다. 그가 왕진오는 날이면 보건진료소에는 마을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는 이곳에서 진료소 여직원의 도움을 받아 주민들을 진료하고 처방전도 써주며 필요하면 손수 가져간 약도 지어준다.

서림리 주민 이성영(83)씨는 "17년째 나이도 잊은 채 마을을 꼬박꼬박 찾아줘 그저 감사할 따름" 이라고 고마워 했다.

李박사는 "힘이 다할 때까지는 이들 오지 마을의 의료봉사활동을 계속 할 생각" 이라고 말한다. 그의 방에는 강원도.속초시.양양군 등 각 기관이 그의 의료봉사활동을 기려 준 감사장 등이 수북히 쌓여 있다. 李박사는 의료봉사활동을 하지 않는 날은 등산과 골프 등으로 체력관리를 하고 있다.

속초〓홍창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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