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구재기 '쑥갓 한 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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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오일장은 여전히 닷새마다 찾아왔다

알싸한 바람이 두 볼을 스쳐 지나갔다

생선 비린내도 서서히 걷히기 시작하고

숫돌에 식칼을 갈던 바람도

짐을 챙기는 파장머리

곱창 한 접시에

막걸리나 한 잔 마시려고 돌아서는데

채소전의 아낙이 반겼다

약속의 땅도 아닌 남새밭

쑥갓 한 줌이 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 구재기(50) '쑥갓 한 줌' 중

꽃 필 무렵이면 5일장은 봄나물의 잔칫상이 된다. 구제역 소문이 들리는 홍성읍내의 소시장은 한풀 꺾이겠지만 시골냄새를 봄나물같이 풋풋하게 시로 뽑아내는 구재기는 장날이면 맛보는 보통 사람들의 가난한 기쁨 한 줌을 택배로 부쳐온다. 선거판도 그렇고 권력과 이익을 좇는 데만 눈들이 벌건데 5일장 같은, 쑥갓 한 줌 같은 이런 맑은 물이랑은 시인에게서나 맛보는 것인지.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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