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이 걸린 법적 분쟁 증언대 오른 '노벨상 수상자'

중앙일보

입력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대학 교수가 우리나라의 키코(KIKO) 분쟁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다고 1일 조선일보가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32부(재판장 변현철)는 로버트 F. 엥글(67·Engle)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석좌교수가 오는 17일 우리나라의 키코(KIKO) 분쟁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다고 30일 밝혔다. 해외 석학이 국내 법정에서 증언하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분쟁의 중심인 '키코'는 은행이 수출기업들에 판매하는 환(換)헤지 파생상품이다. 일정 범위 내에서 환율이 움직이는 것에 따라, 기업들이 사전에 정한 환율로 외화를 은행에 팔 수 있는 권리를 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작년 환율이 급등해 일부 업체가 도산하는 등 '키코 대란'이 일어나면서 법정 분쟁이 시작됐다. 현재 서울중앙지법에는 140여건의 관련 소송이 제기된 상태며, 1조원대의 손해배상을 둘러싸고 기업과 은행 측이 치열한 법정싸움을 벌이고 있다. 기업 측이 "키코가 당초부터 은행에 유리하게 설계된 상품"이라며 손해배상을 요구한 것에 대해, 은행 측은 "환율 급등을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경제적 위기' 예측 전문가인 엥글 교수가 이번에 증인으로 나서게 된 재판은 '수출업체 D사'가 키코에 가입했다가 막대한 손해를 봤다며 '우리은행'과 '외환은행'을 상대로 한 소송 건이다. 엥글 교수는 이번 재판에서 기업 측 증인으로 출석해 키코가 당초부터 은행 측에 유리하게 설계된 상품인지 여부에 대한 의견을 밝힐 예정이다. 'D사' 측은 엥글 교수를 증인으로 세워 키코가 은행이 이득을 취할 수밖에 없도록 불공정하게 설계된 파생상품이라는 점을 부각시킨다는 계획이다.

특히 엥글 교수가 이번에 법정에서 밝히는 의견은 D사 재판 건 뿐만 아니라, 140여 건에 달은 각 종 키코 관련 재판에 증거로 제출될 예정이어서 더 주목 받고 있다.

엥글 교수는 2003년 '경제통계학 및 파생금융상품 시장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물가, 주가, 금리 등의 변동성을 기간대 별로 포착할 수 있는 모형을 제시한 공로가 인정됐다.

디지털뉴스 jd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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