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청사 자리, 조선시대 무기공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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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조선시대 화포인 불랑기포의 일부분인 불랑기자포(佛狼機子砲)가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발굴됐다. 불랑기포는 조선시대 서양에서 전해진 신형 대포다. 종전의 재래식 화포는 포에 직접 화약을 다져 넣고 진흙을 넣어 평평하게 한 뒤 탄환을 장전해 발사하므로 속도가 느렸다. 그러나 불랑기포는 하나의 모포(母砲)에 여러 개의 자포(子砲)가 딸려 있어 미리 장전해둔 자포를 갈아 끼워 연속 발사할 수 있었다.

매장문화재 발굴조사기관인 한강문화재연구원(원장 신숙정)은 올 6월부터 실시한 발굴조사 결과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서울시 신청사 건립부지에서 불랑기자포 1점과 승자총통(勝字銃筒) 다수, 대형 화살촉인 장군전(將軍箭)촉, 철환(둥근 쇳덩이), 철촉 등 다량의 철제 화약무기가 출토됐다고 30일 밝혔다.

이번에 출토된 불랑기자포(길이 43.5㎝, 폭 9.6㎝, 두께 1.2㎝)는 보물 제861호와 제작연대와 형태가 동일하다. 포신에는 ‘가정 계해 지통 중 칠십오근 팔량 장 김석년(嘉靖 癸亥地筒 重 七十五斤 八兩 匠 金石年)’이란 명문이 새겨져 있다. 가정 계해(嘉靖 癸亥)년인 1563년(명종 18년)에 제작된 것으로 무게는 75근8량(45.48㎏)이고 김석년이 만들었음을 뜻한다. 보물 제861호의 경우 제작자가 박명장이고, 무게가 78근8량으로 3근(1.8㎏) 더 무겁다.

육군박물관 김성혜 부관장은 “보물 제861호의 경우 1982년 서울 강서구 목동 지하철매립 작업장으로 옮겨온 흙더미에서 발견돼 출토지가 확실치 않으나 이번에 출토지가 확실한 최초의 유물이 나와 불랑기자포의 도입 시기가 명확해졌다”고 말했다.

불랑기포는 15세기 포르투갈을 포함한 서구제국에서 제작돼 동양에는 1517년 무렵 중국 광둥 지역에 서역상선을 통해 전래됐다. 불랑기포는 이후 작은 사이즈로 개량돼 조선 후기 주력 화기로 사용됐다.

불랑기자포와 승자총통 등은 구들이 시설된 조선시대 1호 건물지 내 도기(항아리) 안에서 출토됐다. 승자총통은 다량이 엉겨 붙은 상태로 출토됐다. 한강문화재연구소 이명엽 조사1팀장은 “이러한 화기(火器)는 민간에서 소장할 수 없는 무기였으므로 이들 건물지는 조선시대 군기시(軍器寺·병기 등의 제조를 맡았던 관청)의 부속건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군기시 터는 현재 한국프레스센터 자리에 해당한다.

신청사 부지에서는 이 밖에 조선시대 백자소발과 분청사기호, ‘내섬(內贍)’이라는 글씨가 쓰인 분청사기 등의 자기류 도 다량 출토됐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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