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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네슈 감독 “팬들 잊을 수 없다, 지금 아니면 못 떠날 것 같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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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3년간 우승 트로피 한 번 들어올리지 못했지만 챔피언 감독 셰놀 귀네슈’ ‘당신은 우승보다 더 값진 무언가를 주고 떠나셨습니다’.

[사진 = 뉴시스]

터키로 떠난 셰놀 귀네슈(57) 감독을 향해 프로축구 FC 서울 팬들이 구단 홈페이지에 남긴 글이다.

이례적이다. 성과만 따지면 귀네슈는 분명 실패한 감독이다. 2007년 부임 후 3년 동안 단 하나의 우승컵도 들어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팬들은 “귀네슈와 함께한 시간이 행복했다”며 진심에서 우러난 박수를 보냈다.

지난달 28일 FC 서울은 구리 연습구장에서 올 시즌 마지막 훈련을 했다. 귀네슈는 26일 고별인터뷰를 하고 서울과 관계를 정리했지만 이날도 훈련장을 찾았다.

귀네슈 감독에게 ‘터키와 한국을 흔히 형제의 나라라 부른다’고 말하자 그는 “돌궐과 고구려라고 불릴 때부터 이어진 인연”이라고 답했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 팬들은 터키를 열렬히 응원했다. 터키 대표팀을 이끈 귀네슈는 감동했다. 3년 전 선뜻 서울로 온 것도 ‘한국 축구를 위해 미력이나마 힘을 보태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귀네슈는 이기고 있어도 멈추지 않는 공격 축구로 K-리그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한웅수 서울 단장은 “귀네슈 감독 부임 초 광주 상무에 5-0으로 이겼는데도 경기 후 라커에서 ‘왜 5-0이 된 후에는 소극적으로 움직이느냐’고 화를 내더라”고 회상했다. 서울의 고참 김한윤은 “감독님은 선수들부터 즐거운 축구를 해야 팬도 즐겁다고 강조했다. 오밀조밀하게 패스 위주로 돌아가는 재미있는 축구를 했다. 감독님이 떠난다니 모두 아쉬워한다”고 말했다.

경기력뿐 아니라 축구 문화도 바꿨다. 요즘엔 한국 감독 중에도 귀네슈처럼 응원용 축구 머플러를 두르고 경기에 나서는 사람이 많다. 그는 어려운 일이 생기면 인터넷을 통해 직접 메시지를 전해 화제를 만들기도 했다. 프로축구연맹은 “축구는 전쟁인데 왜 우리 정보를 사전에 알려줘야 하나”라는 귀네슈의 발언 이후 출전선수 명단 발표를 경기 전날에서 당일로 늦추기도 했다.

그는 올해 초 “심판과 감독이 모여 K-리그 발전을 위해 대화하자”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절반을 넘는 감독들이 팀 훈련을 핑계로 참석하지 못한다고 밝혀 성사되지는 않았다. 심판을 그 누구보다 존중했지만 귀네슈는 “심판 3명이면 챔피언 등극도 가능하다”는 말 때문에 벌금 1000만원의 징계를 받았다. 이는 한국 사람처럼 다혈질이고 자존심도 센 귀네슈가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한 계기가 됐다.

귀네슈 감독에게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세 가지를 바꿀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내심 승강제, 챔피언 결정 시스템 등에 대한 건설적인 비판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세 가지까지 필요 없다. 축구 선수·감독·미디어·행정가·심판 등 축구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솔직한 마음으로 대화를 하면 된다”고 답했다. 대화가 이뤄지면 다른 문제는 금세 해결 방법을 찾을 것이라는 게 그의 속 깊은 생각이었다.

“한국 팬들의 성원을 잊을 수 없다. 지금 아니면 한국을 떠나기가 점점 어려워질 것 같다”던 귀네슈는 30일 밤 비행기로 한국을 떠났다. 늦은 밤 인천공항에는 한 단장과 이영진·최용수 코치, 정조국·기성용 등 선수단 10여 명이 나와 전송했다. 서울 서포터스 200여 명도 태극기와 터키 국기, 터키어로 ‘사랑합니다’라고 적은 플래카드를 흔들며 귀네슈 감독의 앞길을 축복했다.

이해준 기자

귀네슈가 남긴 말

■ 축구는 쇼다. 팬들을 위한 공격 축구를 할 것이다. (2007년 1월) 귀네슈 감독은 2007년 3월 광주 상무에 5-0으로 이긴 후에도 선수들을 질책했다. 막판 느슨한 플레이가 화를 낸 이유였다.

■ 박주영을 종료 직전 교체한 건 관중에게 기립박수를 받을 기회를 주고 싶어서였다. (2007년 3월) 박주영은 수원과 라이벌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손을 흔들며 걸어 나오는 박주영에게 심판은 빨리 움직이라고 주의를 줬다.

■ 축구는 전쟁이다. 왜 하루 전날 적들에게 우리의 정보를 알려줘야 하는가. (2007년 3월) 킥오프 하루 전날 발표됐던 K-리그 출전 선수 명단은 귀네슈의 문제 제기로 2008년부터 유럽처럼 경기 시작 90분 전으로 바뀌었다.

■ 아픈 것을 숨기고 뛰는 것은 팀에 대한 배신 행위다. (2007년 4월) 그는 부상 투혼을 강조하지 않았다. 완벽히 치료한 뒤 최고의 컨디션으로 뛰는 게 진짜 프로라고 말했다.

■ 심판은 골을 넣는 것을 빼놓고 모든 것을 다 했다. (2009년 7월) 부산과 2-2로 비긴 후. 이후에도 심판에 대한 비난이 이어졌다. 심판과 갈등은 귀네슈가 한국을 떠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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