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뒷북치는 서울시 문화재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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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서울 성북구 성북동 소재 '삼청각' 에 대한 문화재 지정이 무산되자 서울시가 당황하고 있다.

시는 문화재 지정을 잔뜩 기대했으나 지난달 30일 현장을 둘러본 시 문화재위원들이 "보존가치가 떨어진다" 며 지정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는 "문화재위원들이 시민들의 높은 문화재 보존의식과 사회적 변화 욕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며 불만스런 모습이다.

재심의를 요청하고 도시계획법에 따라 형질변경을 불허하는 등의 방법을 동원해 삼청각 철거만큼은 막아보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한 문화재위원은 "시가 정말 보존할 생각이 있다면 토지 맞교환 등 합리적인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고 지적했다.

사실 1970년대 유명 요정이던 삼청각은 정치인.기업인들이 드나들던 고급 술집이었다.

그러나 한 건설업체가 삼청각을 헐고 고급 단독주택을 짓겠다며 건축허가 신청을 내면서 보존문제가 불거졌다.

시민단체들은 "72년 지은 삼청각은 조형물과 주변경관이 빼어나고 한.일회담 만찬장소로 이용되는 등 역사.문화적 가치가 있다" 며 보존을 주장했다.

정작 서울시 관계자는 "환경단체가 문제 제기를 하기 전까진 삼청각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고 털어놔 대조를 보였다.

서울의 다른 근대 건축물도 마찬가지. 백제 초기 왕성으로 추정되는 송파구 풍납동 '풍납토성' 이 잘려나가고, 한국 영화사의 산실인 을지로 국도극장이 헐려 나갔다. 이 과정에서 건축물의 가치를 미리 평가해 마구잡이 개발을 막는 시의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70년대 까지만해도 문화.역사적 보존가치가 높은 건축물은 1백여개나 됐지만 그중 절반 이상이 헐렸다.

이제 시민들은 서울시가 삼청각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지에 관심을 쏟고 있다. 이를 제대로 못 풀면 곧 발표될 '보존 대상 근대 건축물' 이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에 맞설 재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양영유 전국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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