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 현장을 간다] 입심 뜨거운데 표심은 썰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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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고 있지만 유권자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농촌이나 대도시의 구분이 없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널리 퍼져있는 데다 선거운동 기간과 농번기까지 겹쳐 득표운동이 외면당하고 있다.

이에 후보들은 합동연설회에 기대를 건다. 청중동원 시비가 있기는 하지만 유세할 마당과 청중이 있기 때문이다. 후보들은 또 연설회 횟수를 줄이고 시장으로 농촌 마을로 유권자를 찾아나서는 등 유세 패턴이 바뀌고 있다.

◇ 썰렁한 표심〓지난달 31일 오전 10시 전남 광양시 중마동 운동장에서 열린 민주당 정당연설회에는 서영훈 대표.한화갑 사무총장 등 당지도부가 대거 출동했으나 당초 예상보다 적은 6백여명의 유권자만 참석했다.

행사직전 연예인들이 출연해 분위기를 띄웠지만 유권자들의 반응은 별로 였고, 사회자가 후보이름을 연호하며 청중들의 호응을 유도했으나 분위기는 여전했다.

지난달 30일 오후 4시 대전시 서구 관저동 원앙마을아파트 앞 빈터. 이 지역에 출마한 민주.한나라당과 자민련 등 이 지역 후보 3명이 공교롭게 한자리에서 개인연설회를 열었다.

후보 연설을 귀담아 듣는 유권자는 7~8명 정도. 이날 오후 5시 유성 자민련 이창섭 후보의 개인연설회가 열린 자운동 자운대 복지상가 앞에도 10여명의 주민이 후보의 연설을 듣고 있어 썰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난달 29일 오후 4시 부산 해운대 리베라백화점 앞. 민주당 김운환 의원이 고객들을 상대로 목청을 돋운다. 그러나 쇼핑을 마친 유권자들은 곧장 셔틀버스에 올라탄다. 정당연설회 쪽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이날 오후 2시30분 부산시 부산진구 양정동 현대아파트 앞. 부산진갑 정재문(한나라)후보측이 피켓 등을 들고 "잘 부탁합니다" 고 외치지만 역시 시민들은 반응이 없다. 오고가는 사람은 많지만 모두 그저 스쳐지나갔다.

◇ 연설회 축소.취소〓대구 동구 서훈(민국당)후보는 2회까지 허용돼 있는 연설회를 아예 포기하고 가두유세와 유권자 직접 접촉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서후보측은 "연설회 모양새를 갖추려면 일정수 이상의 유권자를 동원해야 하는데 그에 따른 시간과 비용을 골목을 누비는데 쓰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고 말했다.

대구지역 한나라당 11개 지구당도 당초 순회 정당연설회를 계획했었다. 그러나 직접 발로 뛰며 접촉하는 전략이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라 횟수를 대폭 줄이고 대신 수성구 등 경합지역의 4~5개 지구당을 묶어 한번 정도 연설회를 마련할 예정이다.

충북 보은-옥천-영동 선거구 후보들은 지난달 30일 장날을 맞아 옥천읍내에서 개인연설회를 준비했으나 청중이 적어 대부분 이를 포기하고 도보유세에 나섰다.

이용희(민주)후보는 이날 오전 옥천읍 궁전예식장 앞에서 이동차량을 이용, 5분가량 연설을 하던 중 청중들이 20여명에 불과하자 중단하고 상가를 돌며 지지를 호소했다.

심규철(한나라).박준병(자민련).어준선(무소속)후보도 하상주차장 등 읍내에서 개최하려던 개인연설회를 모두 취소하고 시장통을 돌며 주민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 유권자 찾아나서기〓포항의 경우 경북 동해안 최대의 시장이자 가장 번잡한 죽도시장 개풍약국 앞에서 북구 후보 3명이 하루에 두세차례씩 유세를 벌인다.

지난달 31일 오전 5일장이 열린 경북 안동시 길안면에도 주요 정당의 후보 3명이 모습을 나타냈다. 한결같이 멀티비전이 장착된 유세차량에 현란한 로고송을 동원, 사람들을 끌어모으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시장을 찾은 유권자들의 반응은 거의 냉담했다. 농민 金모(57)씨는 "선거철에만 찾아오는 사람들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며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안동의 선거인 명부 공람률도 10%를 조금 웃돌고 있을 뿐이다.

해남-진도의 후보들은 봄가뭄으로 밭에 물을 대야하는 등 선거운동기간이 농번기인 점을 감안, 해남읍에 5일장이 서는 6일을 공략일로 잡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 등 신도시 후보들은 대부분의 주민들이 서울로 출퇴근하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 지하철 역.버스정류장 주변 등에서 유세는 하지만 사람들이 모이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 반응〓崔모(53.교사)씨는 "정치인들이 싸움만 하고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주지 않는데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겠느냐" 며 "누가 국회의원이 되든 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고 인식하는 시민들이 갈수록 느는 것같다" 고 말한다.

부산 중앙운수 택시기사 박수부(朴壽富.51)씨는 "과거에는 택시가 작은 정치토론장이었으나 지금은 하루종일 운전을 하고 다녀도 선거 이야기를 하는 손님이 거의 없다" 고 말했다.

신라대 정홍섭(鄭弘燮.52)교수는 "많은 후보들이 병역.납세 등 국민의 기본적인 의무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도돼 유권자들은 이들이 국민을 대표할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됐다" 며 "특히 정보화사회가 되면서 개인주의로 흐른 것도 한 원인" 이라고 지적했다.

정용백.구두훈.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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