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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마천루의 저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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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집트 피라미드는 파라오의 무덤이다. 파라오는 생전에 자기 무덤을 만들었다. 그런데 무덤을 여러 개 만든 파라오가 있었다는 게 밝혀지면서 취로 사업용, 공공 사업용 피라미드가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일거리가 없는 나일강 범람기에 농부들에게 일자리를 주려고 피라미드를 축조했다는 것이다.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도 “이집트의 신화적인 부(富)도 의심의 여지없이 피라미드 축조와 귀금속 탐색이라는 두 가지 활동의 덕”이라며 “피라미드 두 개는 하나에 비해 두 배의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대형 토목 건설 공사는 약도 되지만 독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구약성서에는 인간들이 바벨탑을 쌓다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 공사가 중단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교만한 인간이 벌이는 거대 공사는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의 뜻으로 새길 수 있다. 16세기 급진 신학자 토마스 뮌처는 루터의 성경절대주의에 반대해 “Bibel, Babel, Bubel(비벨, 바벨, 부벨)”이라고 외쳤다. 성경·바벨탑·거품이 서로 거기서 거기라는 뜻인데, 오늘날엔 ‘성경의 바벨탑은 거품 현상’쯤으로도 풀이할 수 있겠다. 교만은 거품 시기 인간의 특징이니까.

마천루를 세우면 재앙이 온다는 ‘마천루의 저주(skyscraper curse)’는 현대판 바벨탑 얘기다. 앤드루 로런스에 따르면 당대의 마천루는 거품 시기에 착안돼 위기를 지나며 완공된다. 대표적으로 102층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대공황 직전 구상돼 1931년 완공됐다. 완공 직후 건물은 절반쯤 비어 있어 ‘엠프티(Empty)스테이트 빌딩’으로 불렸다.

우리나라에는 ‘사옥 괴담’이 있다. 잘나가던 기업이 능력 이상의 사옥을 짓다 쓰러진다는 속설이다. 호황기의 성취에 도취한 나머지 사람들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제 위에 더 야심 찬 계획을 추진한다. 그러다 과욕·과신·과열의 끝인 파국으로 치닫는 것이다.

세계 최고층 빌딩 등 초대형 공사판이었던 두바이가 요즘 위기다. ‘상상력과 비전의 리더십’으로 칭송 받던 게 엊그제 일이다. 당대에는 부를 안겨주고 지금은 찬란한 유산인 피라미드처럼 두바이는 다시 빛을 발할 ‘천지 개벽의 신천지’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모래밭 위 기초가 약해빠진 ‘사상누각(沙上樓閣)’에 그칠까. 두바이 사람 못지않게 두바이를 칭송한 사람들도 답을 생각해 볼 때다.

허귀식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