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내 나는 '대장간 미술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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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 현대회화처럼 보이는 작살 모음.

삐죽빼죽 날카로운 날을 세운 삼지창이 나란히 흰 화면에 담겼다. 한폭의 현대회화 같다. 물고기 잡는 작살도 그림처럼 걸렸다. 찌르고 던져 무기로 쓰던 쇠붙이가 힘이 넘치는 미술품으로 둔갑하는 순간이다. 부젓가락.모루.도가니.풀무.부손…. 몇십년 전 대장간 풍경이 되살아온다. 벌겋게 단 쇠를 두들겨 각종 연장과 생활도구를 만들던 옛 어른들 모습이 어른거린다.

서울 동숭동 쇳대박물관(관장 최홍규)에서 9일 막을 올린 '대장간'은 쇠맛이 물씬 풍기는 땀내 나는 특별전이다. 쇠로 만든 것이면 무엇이든 모아온 철물쟁이 최 관장이 우리 선조의 노동과 삶이 배어 있는 추억 어린 물목을 야무지게 풀어놓았다. 일터에 널려 있으면 대수롭지 않게 보였을 대장간 물건들이 애정어린 눈썰미를 만나 윤나고 갈무리돼 전통미술로 변했다.

불린 쇳덩이를 올려놓고 망치나 쇠메로 쳐서 연장을 만들던 모루는 현대 조각 못지 않은 조형성을 뽑낸다. 뜨거운 물건을 집을 때 쓰던 집게는 그게 그거 같지만 손잡이 하나하나 감친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다. 화로에 꽂아두고 숯이나 불씨를 나르던 작은 삽인 부손도 만듦새가 다 다르다. 담금질로 단단해진 쇠의 힘이 피부에 와 닿는다.

고려시대 가위부터 조선 후기 낫과 호미까지 한국인의 생활사를 쇠를 통해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수십년 흘린 주인의 땀으로 삭은 호미 한 자루는 책이 전해줄 수 없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최 관장은 "'햄버거 세대'에게 '보릿고개 세대'의 삶을 쇠맛으로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10월 10일까지. 02-766-6494(www.lockmuseum.org).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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