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사냥으로 매 발톱 다 빠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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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호 04면

두바이의 한 고층 건물에 셰이크 무하마드의 대형 사진이 걸려 있다. [서정민 교수 제공]

‘추락에는 한계가 없다’. 28일자 이집트 일간지 알-아크바르에 등장한 두바이 관련 기사의 제목이다. ‘꿈에는 한계가 없다. 마음대로 꿈꾸어라(Dreams have no limits. Go Further)’라는 말을 패러디한 것이다. 이는 두바이 지도자 셰이크 무하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의 모토다. 이 기사는 무한한 상상력과 창조적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평가를 받은 지도자를 꼬집었다. 예컨대 “지나친 사냥으로 매의 발톱이 다 빠져버렸다”며 매 사냥 애호가인 두바이 지도자의 무모한 성장전략을 거론했다. 매 사냥은 토끼나 작은 사슴을 사냥하는 걸프 지역의 전통적인 스포츠다. 간혹 큰 먹이를 사냥할 때 매의 발톱이 빠지는 경우가 있다. 기사는 두바이 지도자가 매에게 새로운 발톱이 나올 시간도 주지 않고 사냥터로 내몰았음을 비유한 것이다.

위기 맞은 ‘상상력의 리더십’ 셰이크 무하마드

올 들어 7개 토후국으로 구성된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여러 신문에는 셰이크 무하마드와 아부다비의 지도자 칼리파 국왕의 회담 장면이 자주 등장했다. “두바이 지도자가 한 달에 한 번 이상 아부다비를 방문해 (지원을) 애걸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았다. 아부다비가 100억 달러에 이르는 두바이 채권을 매입해 주는 대가로 에미리트항공 등 두바이의 주요 자산을 인수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이런 소문들은 UAE뿐 아니라 아랍 언론에도 자주 등장했다. 지난 달 경제전문지 알-아흐람 알-이크티사디는 “셰이크 무하마드가 군화 맨에서 애걸 맨으로 변신했다”고 보도했다. 군화를 신은 채 여러 공사 현장을 아침마다 순시하던 정력적인 지도자 셰이크 무하마드가 이제 헬기를 타고 긴급하게 아부다비를 드나들며 애원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아부다비는 두바이에서 가장 많은 투자를 하는 ‘돈줄’ 역할을 해왔다.

요즘엔 아랍 언론조차 셰이크 무하마드의 재정난을 동정하지 않는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는 두바이 지도자의 지나친 자신감이다. ‘두바이 위기설’은 지난해 10월부터 나돌았다. 그러나 셰이크 무하마드는 이를 묵살하거나 과소평가했다. 올 4월엔 특별기자회견을 갖고 “두바이 경제는 최악의 시기를 지났다”고 선언했다.

이어 “글로벌 금융위기로 다른 지역들이 큰 피해를 본 데 비해 두바이 경제는 상대적으로 적은 영향을 받았다. 어떤 위기가 닥치더라도 확신을 갖고 적절히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의 사업 규모 축소 및 지연 발표가 잇따른 데 대해서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건설 프로젝트들은 모두 완수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셰이크 무하마드는 오히려 외부의 우려를 공격했다. 채무 의존도가 높은 두바이 경제의 취약성을 거론해온 서방·아랍 언론의 보도에 대해 “해외 언론들의 ‘융단 폭격’에도 두바이 경제는 굳건한 상태”라며 “아랍권에서의 경제 발전은 해외 언론으로부터 흔히 그런 대접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두바이의 디폴트 선언 사태를 지켜보는 중동의 전문가들은 ‘그가 지나치게 앞만 보고 달려왔다’고 꼬집는다. 요르단의 전략연구소 하마르나 무스타파 소장은 “위기가 2006년부터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두바이 지도자는 이를 과소평가했다”고 지적했다. 2006년 5월 두바이의 주가는 폭락했다. 2005년 말 1270포인트이던 종합주가지수는 60%가량 폭락했다. 여기에 신주 공모 열풍, 이슬람 테러, 두바이포트월드(DPW)의 미국 항만 운영권의 인수 무산 등 여러 악재가 겹쳤다.

무스타파 소장은 “경제가 취약성을 분명히 드러냈지만 증시가 다시 폭등하자 두바이와 지도자는 과거의 아픔을 망각했다”고 지적했다. 셰이크 무하마드는 당시 “두바이는 다시 일어서고 있다”며 “국가와 기업 그리고 개인이 다시 ‘전속력(full throttle)’으로 달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가 추진해온 성장전략은 국가주도형이면서 공급주도형이었다. 이번 위기의 핵심인 두바이월드 같은 대기업들은 대부분 국가, 바꿔 말해 왕족이 최대 주주인 사실상의 국영기업이다. 경제 개발의 주체가 정부 또는 왕족인 셈이다. 셰이크 무하마드는 국가 지도자로서 주요 기업의 사실상 최고경영자(CEO)였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업을 펼칠 수 있어서 강력한 추진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민주적인 의사결정은 생략되기 일쑤였다. 개인적인 ‘꿈’을 바탕으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자금을 조성하고, 계약을 체결하는 ‘원맨 쇼’를 면치 못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공급주도형 개발전략이다. 그는 주요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마다 “우리가 예상하는 고객 수는 10억 명”이라고 공언해왔다. 수요를 정확히 예측하려는 노력보다는 우선 공급을 늘린 다음 수요를 창출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그 결과 두바이는 자국 국내총생산(GDP)의 6배에 가까운 3000억 달러 규모의 개발 프로젝트를 한꺼번에 추진하면서 재정파탄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더욱이 각종 프로젝트마저 부동산 개발 분야에 치우쳐 거품 붕괴라는 후폭풍을 맞고 만 것이다.

셰이크 무하마드는 그동안 혁명적이고 창조적인 국가개조(改造)의 길을 걸어왔다. 한낮에 섭씨 50도를 웃도는 모래사막 위에 물류·무역·정보기술(IT)·의료·미디어·레저·관광 등을 망라한 세계 최고의 종합 허브를 만드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하지만 이제는 미래보다는 과거도 돌아보며 현실을 직시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연방 체제인 UAE 안에서 두바이의 발언권은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두바이 정부는 최근 세계 최고층 버즈 두바이(160층, 810m)의 완공식을 연기했다. 셰이크 무하마드의 두바이 지도자 취임 4주년(내년 1월 4일)을 의식해서다. 160층 꼭대기에 선 그가 두바이의 사면초가 상황을 파악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지 지켜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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