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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서 앉지도 못했는데 … 송송 올라오는 머리카락이 이렇게 예쁠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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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호 22면

회사원 김모(44)씨. 그녀는 출퇴근길 지하철을 타고 가다 자리가 나도 잘 앉지 않는다. 정말 피곤하다 싶어 앉을 때라도 앞과 옆 머리카락을 정수리 쪽으로 살짝 넘긴 다음 앉는다. 머리카락을 넘기며 검지 중지에 힘을 넣는 나름의 기술도 터득했다. 정수리에 생긴 원형 탈모 때문이다.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눈길이 훤하게 뚫린 자신의 머리꼭지에 머문다는 걸 생각하면…. 신문을 보면서도 ‘점검’을 잊지 않는다. 김씨는 여자치곤 큰 키인 1m70㎝다. 자신보다 키 큰 사람과 서서 얘기할 때 그녀는 머리를 뒤로 젖히는 버릇이 생겼다. 구멍 뚫린(?) 정수리를 들킬까봐….

40대 직장 여성 김씨의 원형 탈모 탈출 1년

그녀의 친구들 가운데는 원형 탈모는 아니지만 머리가 가늘어지고 빠져 고민을 하는 이들이 꽤 된다. 김씨는 “남자들은 탈모가 심하면 확 밀면 되지만 여자는 그것마저 안 된다며 우스갯소리를 나누곤 한다”고 했다. 영화배우 율 브리너·숀 코너리, 애플 회장 스티브 잡스 등 멋진 남자 대머리는 있어도 현실 속 여성은 없다.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에서 여승이 되려고 삭발하거나(강수연), ‘에얼리언 3’에서 외계 생물과 싸우는 전사(시거니 위버), ‘마이 시스터즈 키퍼’에서 백혈병에 걸린 자신의 딸을 위해 삭발하는(캐머런 디아즈) ‘극단적 상황’의 영화를 통해 드러난 이미지가 대부분이다. 김씨는 “친구들이 시어머님이나 친정어머님에게 부분 가발 선물을 해드린다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60대 여성들이 교회나 동창 모임에서 ‘가발 계’를 조직한다는 얘기도 화제에 오른다”고 귀띔했다.

김씨의 친구인 공무원 이모씨도 탈모로 고생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 왕관 쓰는 부위의 머리가 가늘어지고 점점 빠지면서 주저앉았다. 머리를 빗어놓으면 ‘크리스마스 트리’ 같은 모양이 된다. 새치도 많다. 우수한 성적으로 고시에 합격해 20년간 공무원 생활을 통해 그녀가 굳힌 이미지는 ‘다부진 재원’이었다.

그런데 최근 모습은 그런 이미지와는 영 맞지 않았다. “3년 전 업무 강도가 최고도로 달했을 때 머리카락이 확 빠지는 것 같았다”는 그녀는 파마로 처진 윗머리를 세우고 미용실에서 추천하는 탈모 방지 제품으로 관리했다. 그러나 머리카락은 더 가늘어졌다. “머리카락이 많고 건강할 때나 파마 스타일이 살지, 가는 머리카락은 파마를 하면 더 부스스하고 추레해 보인다”며 그녀는 한탄했다.

올봄부터 그녀는 전략을 바꿨다. 머리를 짧게 하고 아예 파마를 중단했다. 샴푸 뒤 린스도 쓰지 않았다. 두부 같은 콩 제품, 채소를 많이 먹었다. “요즘엔 머리카락이 굵어지고 튼튼해진 느낌이 든다”고 했다.김씨 역시 ‘여성 탈모의 원인은 유전적 요인’이라는 의학계 지적에도 원형 탈모만은 스트레스가 주범이라고 믿고 있다. 여고 시절 유난히 검고 윤기 나는 머릿결로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숱도 많았다. 그녀의 윗대 어른들 가운데 탈모인은 없다. 성인이 된 뒤 파마를 한 것은 손에 꼽을 정도이고 염색도 한 번 안 했다고 한다. ‘동그라미’가 생긴 것은 취업으로 고민할 때인 대학 졸업반 때다. 가르마 근처에 1원짜리 동전 크기 만한 공간이 생기더니 점점 10원, 500원 동전 크기로 커졌다. 가르마 방향을 바꿔도 더 이상 가려지지 않았다. 2005년 스트레스가 심했을 때 상태는 극에 달했다. 그녀의 동그라미는 더 커졌고 반짝반짝 빛나기까지 했다. 부분 가발도 써보고, 똑딱 핀으로 가려도 봤다. “철 없는 아이들이 ‘우리 엄마 머리는 뻥 뚫렸어요’라고 얘기할 땐 가슴이 상처로 뻥 뚫렸다”고 한다.

한 가닥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된 건 1년 전. 일본 출장길에 탈모가 심한 남자 동료를 따라 바르는 약을 샀다. ‘미녹시딜’ 성분이 든 제품이었다. 약을 바르고 스트레스를 안 받기 위해 노력했다. 피부과에 가서 주사제도 세 차례 정도 맞았다. 그렇게 지나던 올여름 어느 날. “어머나, 언니! 송송 올라오네요. 보이시죠? 축하해요.” 믿기 어려워하는 김씨에게 미용실 원장은 머리카락을 당겨가며 보여주려 했다.

“어머, 당기지 마세요. 그나마 뽑히면 어찌하려고….” 병원 치료와 미녹시딜 제품, 스트레스 관리 가운데 어떤 게 ‘공신’인지 불분명하지만, 분명 몇 가닥이 ‘송송’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지하철 자리에 앉으면 ‘원형 탈모’란 게 확연히 드러날 정도로 밀도는 여전히 낮다. ‘그렇지만 반짝이지 않는 게 어딘가’, 그녀는 스스로 위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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