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약한 척, 여린 척, 힘든 척 … 여성들이 소각해야 할 버릇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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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여자직장인 잔혹사
임기양 지음, 마젤란
323쪽, 1만3000원

소설가 김훈의 산문 ‘밥벌이의 지겨움’에 이런 구절이 있다. “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싯바늘을 함께 삼킨다. 그래서 아가미가 꿰어져서 밥 쪽으로 끌려간다. 저쪽 물가에 낚싯대를 들고 앉아서 나를 건져 올리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자가 바로 나다. 이러니 빼도 박도 못하고 오도가도 못한다. 밥 쪽으로 끌려가야만 또다시 밥을 벌 수가 있다.”

사실 돈벌이는 고달프다. 취업 대란 시대에 직장 하나 꿰차고 앉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출근부에 도장을 찍어야 하는 직장인의 삶이 그저 편하게 굴러가지는 않는다. 조직의 논리에 약육강식의 법칙, 저자의 말대로 늘 3종 세트처럼 구비된 좋은 사람·나쁜 사람·이상한 사람과의 인간관계까지 수많은 변수와 상수가 무한한 조합을 만들어 내니 직장 생활은 답을 찾기 어려운 고차원 방정식이 된다. 게다가 여기에 ‘여자’라는 변수까지 더해지면 답은 안드로메다로 간다.

책은 직장이라는 잔혹한 공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준엄하기까지 해 더 고달픈 밥벌이 전선에서 분투하는 여성 직장인을 향한 충고이자 격려와 위로다. 때문에 책장을 덮으며 조금은 편안한 안도감이 든다. 세상의 수많은 직장 여성이 나와 비슷하게 고민하며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 까닭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글과 같은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자신감이 가장 든든한 방패가 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약한 척, 여린 척, 힘든 척’ 등 저자가 직장에서 여자가 소각해야 할 버릇으로 지적한 항목에도 귀 기울일만하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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