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번잡한 출판일, 그래도 詩를 생각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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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호 10면

치과의사, 초등 국어교과서에 자신의 동시가 여섯 편이나 실린 유명 시인, 『너도 하늘말나리야』(총 판매부수 45만 부),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35만 부) 등을 펴낸 잘나가는 출판사 대표. 12월 4일 2009년 제5회 윤석중문학상을 수상하는 신형건(44) 시인의 화려한 ‘스펙’이다. 그는 경희대 치의학과를 졸업한 뒤 11년 동안 치과의사 생활을 했고, 1998년 출판사 ‘푸른책들’을 차렸다.

2009년 윤석중문학상 받는 ‘푸른책들’ 신형건 대표

-안정된 의사 수입을 포기하고 출판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게 특이하다.
“치과의사 역시 내 의지로 선택한 직업이었다. 의미가 있고 보람도 컸다. 직업의 안정성 면에서도 좋았다. 하지만 더 하고 싶은 일이 문학이었다. 90년대 후반만 해도 아동문학 전문 출판사가 없었다. 나라도 나서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 대표는 문학소년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현대문학’ ‘시문학’ 등의 잡지를 읽었고, 자신이 쓴 글을 모아 문집을 만들었다. 문학을 전공하겠다는 꿈을 포기한 것은 고3 7월이었다. 당시 경희대 치과대학이 문과 출신 학생들의 교차지원을 받아줬다고 한다. 그는 진로를 치대로 바꾸면서 신춘문예라도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3 때 응모한 동시가 경향신문과 조선일보의 최종심에 올랐고, 대학 1학년 때인 84년 ‘새벗문학상’에 동시가 당선해 등단한다.

-출판 사업은 문학이라기보다 경영 아닌가.
“그래서 출판일을 하면 자기 글 못 쓴다는 말이 있다. 그 때문에 선배 작가들이 우려를 많이 했다. ‘글을 쓰려면 지금이라도 관두라’고 충고한 출판계 선배도 있었다. 솔직히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시를 쓰기가 쉽지 않다. 병원 일을 할 때는 셔터만 내리면 병원 일을 잊고 시를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출판은 늘 궁리해야 하는 작업이어서 머리가 조용할 때가 없다. 작품 수가 확 줄어들었다. 지난해 나온 동시집 『엉덩이가 들썩들썩』이 8년 동안 쓴 작품을 다시 모은 책이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지난해부터 열심히 하고 있다. 그래서 1년 반 만에 한 권 분량의 작품을 썼다.”

그는 올 8월 동시집 『콜라 마시는 북극곰』을 출간했고, 이 작품으로 윤석중문학상을 받았다.

-출판사 경영도 성공적인데.
“회사를 만든 지 6년 만에 적자를 면했다. 처음엔 어려웠다. 책 반응이 좋아도 남는 게 없었다. 출판유통 시스템이 상당히 낙후돼 있어 수금이 잘 안 됐다. 또 국내 작가들의 작품만 출간하겠다는 원칙을 지키려다 보니 제작기간이 너무 길어지고 제작비도 많이 들었다. 계속 원칙을 고수해선 안 되겠더라. 돈을 벌어야 투자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팔리는 책도 좀 내야겠다’는 생각에 5년 전 번역서도 낼 브랜드 ‘보물창고’를 만들었다.”

-2006년 보물창고에서 출간한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의 반응이 대단하다.
“독자들이 좋아하는 트렌드를 찾아 거기에 맞춰 낸 책이다. 잘 팔리는 어린이책을 만들려면 보편적인 트렌드를 다루거나 시의성이 강한 트렌드를 잡아야 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전형적인 보편적 트렌드다. 물론 이미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등 이 분야의 강자가 있다. 그래서 아류작이라고 못 낼쏘냐, 했다. 영미권 책을 다 뒤져 비슷한 작품을 찾아냈다.”

3년 만에 총 35만 부가 팔린 『사랑해 …』의 성공은 사실 출판계의 이변으로 통한다. 외국 무명 작가의 첫 작품이고, 초판이 나온 미국에서도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책이어서다. 『사랑해 …』의 성공 이면엔 ‘시인’ 신 대표의 역할이 컸다. 신 대표가 직접 번역을 맡아 간결한 시적 언어로 옮겼고, 원제 ‘I Love You Through And Through’를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란 강한 느낌의 제목으로 바꿔놨다.

-성공한 경영인이면서, 또 이번엔 문학상까지 받게 됐다.
“90년 첫 동시집 『거인들이 사는 나라』를 펴냈을 때 윤석중 선생님이 한번 보자고 하셔서 새싹회를 찾아간 일이 있었다. 선생님이 “잘 쓰더라, 열심히 써라”며 격려해 주셨다. 그래서 동시 창작에 대한 열정이 한껏 고무됐었다. 그리고 작고하실 때까지 한 번도 못 뵈었는데, 이제 다시 내게 상으로 자극을 주시는 것 같다. 좋은 동시도 많이 쓰고, 또 좋은 동시집도 많이 출간해야겠다는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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