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연극' 준비하는 박홍진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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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9면

누구나 한번쯤은 소망했을 법한 연극배우.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무대를 휘어잡는 자신을 그려보았을 것이다. 이제 그 꿈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 기술을 활용한 가상현실 연극 덕분이다. 가상현실이란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사이버 공간에서 사람들이 실제 현실과 비슷한 체험을 하는 것을 말한다.

아직은 하드웨어쪽에 보완할 점이 많아 활발하진 않지만 향후 공연문화 전체를 뒤집을 정도로 막강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예컨대 이호재나 전무송, 혹은 박정자나 손숙 같은 대스타와 함께 무대에 설 수도 있다. 비록 가상공간이지만 말이다.

이런 인터넷 연극을 활발하게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극단 몸의 박홍진(33)대표가 그 주인공. 아직은 불모지와 같은 국내 사이버 연극의 활성화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는 인터넷에 지난해 8월 개설한 연극 사이트 '우리 연극(http://www.otr.co.kr)' 에 가상연극현실 코너를 마련하고 국내외 정보를 활발하게 소개하고 있다. 오는 12월에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함께 국내 최초의 가상현실 연극 '버라이어티' 를 공연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시작한 동기가 재미있다. 동국대 연극영화과 대학원생이던 5년 전 후배들에게 연극을 지도하다가 이런 의문을 품었다.

"배우들이 벽을 타고 올라가 천장에 붙어있을 수는 없을까. 그러면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 텐데. 만화영화 '스파이더 맨' 의 장면을 무대에 구현할 방법은 없을까. " 다소 황당한 발상이지만 그는 이런 생각을 현실로 옮기려 애쓰고 있다.

"일례로 무대 세트를 볼까요. 지금은 의자.식탁 등 실물을 사용하지만 앞으론 무대가 텅텅 비게 될지 모릅니다. 홀로그램(3차원 형상)기술을 활용한 이미지를 무대에 투사해 관객들이 마치 실물을 보는 것처럼 꾸밀 수 있거든요. 실제로 외국에선 이런 작품이 속속 선보이고 있지요. "

그는 이후 외국 동향 등을 주시하며 가상현실 연극의 국내 정착 가능성을 주목하게 된다. 특히 일반인들이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게 되는 일대 혁명적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고 자신한다.

"필요한 장비만 갖추면 누구나 배우가 되는 세상이 열릴 것입니다. 완성된 작품을 온라인으로 즐기는 영화와 달리 가상현실 연극은 관객이 직접 작품에 들어가 스스로 작품을 만들어 간다는 점이 다르지요. 예컨대 반쯤 준비된 작품을 컴퓨터로 불러내 누구라도 자신의 취향에 맞게 연극을 진행시킬 수 있습니다. "

다만 인터넷 전송속도가 훨씬 더 빨라져야 하고, 3차원 안경.촉감조끼 등 특수장비 가격도 크게 떨어져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그는 디지털 연극의 잠재력을 주목한다. 그가 표현을 빌리면 '언어누연' .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연극' 을 뜻한다.

"디지털 기술은 소수의 작가가 만들어 놓은 작품을 즐기는 시대에서 일반인 모두가 예술의 창조자가 되는 시대로 돌려놓을 것입니다. 예술의 대중화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하는 것 아닐까요. " '

"혼자 힘으론 너무 벅찬 작업이 아니냐" 고 묻자 "제가 다 이루지 못하면 후배들이 완성하겠지요" 라며 활짝 웃는다. 이미 불붙은 디지털 문화는 결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것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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