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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윈도] 역사가 만든 슬픔…쿠바소년 재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쿠바 난민소년 엘리안 곤살레스 만큼 역사의 무거운 짐을 짊어진 꼬마가 또 있을까. 대통령 아버지의 장례행렬에 거수경례를 붙인 어린 케네디가 있었고 무심(無心)의 표정으로 아버지의 영정을 끌어 안았던 광주(光州)의 소년이 있다.

그들 역시 뭇사람들의 기억속에 각인돼 있지만 역사적 갈등의 상징성으로만 따지면 엘리안은 오히려 더 한 건지도 모른다.

그 소년이 조만간 아버지가 살고 있는 쿠바로 돌아가게 된다. 미국 법원이 21일(현지시간) 송환을 결정한 것이다.

그의 송환에 반대하는 미국내 친척들은 즉각 항고했지만 결정이 뒤집힐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한다.

새 천년을 목전에 둔 1999년 11월 25일.쿠바를 탈출한 보트가 미국 해안에 거의 도착했다가 그만 배가 뒤집혔다.이혼한 어머니와 친척들 모두가 익사했고 튜브 하나를 잡고 있던 엘리안만 구조됐다. 엘리안은 그때도 생존의 드라마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송환을 앞둔 지금도 그의 존재는 드라마틱하다.

우선 엘리안에 대한 법원의 결정은 부권(父權)의 신성함을 상기시켰다.

무어 판사의 취지는 사실 "정부도,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도, 망명 정치가도 부모를 제치고 여섯살짜리 아이의 인생을 대변할 수는 없다" 는 것이었다.

그의 논지는 명확했다. "이러한 사건에서 여섯살은 법적 문제를 이해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다. 그렇다면 법적으로 그의 이익을 대변할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자식을 학대했다는 증거가 없는 한 아버지는 움직일 수 없는 대변자다" 는 내용이다.

무어 판사는 법정에서 결정문을 읽지 않았다.

그는 대신 인터넷에 올린 결정문에서 "(미국에서의) 하루가 지나면 그것은 소년과 (쿠바에 있는) 아버지 사이에 멀쩡한 하루가 또 상실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는 감상적 표현까지 구사했다.

쿠바로 떠나더라도 엘리안은 여전히 드라마틱한 존재로 남을 것 같다.

호세 마르티(Jose Marti)는 쿠바의 대(對)스페인 독립투쟁을 이끈 인물이다. 그는 카스트로 치하에 있는 쿠바 국민에게도, 미국으로 망명한 쿠바인에게도 자유의 심벌이다.

엘리안은 여섯살에 불과하지만 마치 마르티 처럼 양쪽의 영웅이 되어 있다. 쿠바 국민에게는 '사악한' 자본주의 국가로부터 자랑스럽게 생환할 꼬마 영웅으로, 쿠바 망명인들에게는 죽음의 파도를 넘어 자유의 땅에 상륙한 어린 자유투사로 기억되고 있다.

여섯살짜리 무의식(無意識)의 소년을 통해 역사가 연출해 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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