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칭찬합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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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버나드 쇼가 '피그말리온' 을 발표한 건 1912년이었다.

주인공인 헨리 히긴스가 런던의 꽃파는 아가씨인 엘리자 둘리틀을 자기충족적 예언에 의해 귀부인으로 바꿔놓는데 성공한다는 줄거리다. 극(劇)의 결말 부분에서 둘리틀이 히긴스의 친구 피커링에게 털어놓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귀부인과 꽃파는 여자의 차이는 행동거지에 있는 게 아니라 대접의 차이에 있다. " 같은 여자도 귀부인으로 대접해주면 귀부인이 되는거고 꽃파는 여자로 대접하면 꽃파는 여자가 되고 만다는 얘기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피그말리온은 자기충족적 예언의 효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키프로스의 왕인 피그말리온은 상아(象牙)를 깎아 직접 만든 이상(理想)의 여인상을 사랑하게 돼 말을 걸고 선물을 주고 심지어 잠자리까지 함께 했다.

조각을 마치 살아있는 연인 대하듯 한 것이다. 안타깝게 여긴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여인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피그말리온 효과' 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했다. 사람은 기대한대로 변하게 마련이란 뜻이다.

자기충족적 예언의 효과를 일련의 실험을 통해 입증한 사람은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인 로버트 로젠털이었다. 64년 그는 한 초등학교 교사집단에게 특정 아이들의 이름을 주고 이들의 지능지수가 높기 때문에 공부를 잘 할거라는 믿음을 심어줬다. 그 아이들은 무작위로 선정된 평범한 아이들에 지나지 않았지만 학년말에 보니 실제 공부를 잘했다.

로젠털은 쥐를 이용한 미로찾기 실험에서도 유사한 결과를 확인했다. 같은 쥐라도 등에 '메이즈-브라이트' (미로 잘 찾는)라고 써붙인 쥐들이 관찰 결과 다른 쥐들보다 미로를 더 잘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심리학 용어로 굳어진 '로젠털 효과' 는 인간사에서 기대와 칭찬, 격려가 갖는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정치인을 대상으로 가상의 주가를 매겨 의정활동과 인기도를 평가하는 인터넷 사이트인 포스닥의 '칭찬합시다' 코너는 그래서 관심을 끈다. 야당의원이 여당의원 한 명을 골라 칭찬하면 칭찬받은 여당의원은 다시 야당의원 한 명을 선정해 좋은 점을 얘기하는 '칭찬 릴레이' 가 진행되고 있다.

"뜻밖에 칭찬을 받아 기쁘지만 한편으로 나를 '다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는 것이 이상희(李祥羲.한나라당)의원으로부터 19번째 칭찬 바통을 넘겨받은 신낙균(申樂均.민주당)의원의 반응이다.

총선을 앞두고 상호비방과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이 정도면 벌써 칭찬의 효과가 절반은 나타나고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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