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추리소설 3권 펴낸 ‘시골 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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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까머리 중학생, 단발머리 여고생 때 교내 백일장에서 단편소설과 수필, 시 한편을 출품하며 누구나 한 번쯤 꿈꿨을 ‘작가’. 마흔을 훌쩍 넘어 쉰을 바라보는 의사가 어릴 적 소박한 꿈을 이뤘다.

글=신진호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세 번째 의학추리소설을 낸 양희찬 원장이 자신의 저서 『불멸의 제국』을 들고 수줍게 웃고 있다. 양 원장은 자신을 ‘작가’라고 불러줄 때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조영회 기자]

몇 년 전 정치와 경제에 ‘한 식견 한다’는 시골의사가 언론에 얼굴을 내밀었다. 거침 없는 말투와 신선한 주장으로 신문 독자와 방송 시청자들로부터 관심을 끌었다. 그는 요즘도 신문과 방송을 누비고 있다. 서점가에선 그가 저술한 경제관련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주변에선 경제에 문외한일 것 같은 의사, 그것도 시골의사가 소설을 집필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해 책을 구입했다는 독자들도 적지 않았다. 그는 의사이면서 작가로도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셈이다.

얼마 전 천안에도 소설을 세 권이나 낸 의사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비인후과 전문의이면서 소설을 집필했다는 데 더구나 장르가 ‘추리소설’이어서 더 관심이 갔다. 이름만 대면 천안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미 탄탄한 기반을 쌓은 그가 왜 소설에 매달렸는지, 또 그렇게 어렵다는 추리분야에 관심을 가졌는지 궁금했다.

주인공은 천안 우리이비인후과(신부동) 양희찬(48) 원장. 지난 13일 양 원장을 만나 ‘작가 양희찬’에 대한 얘기와 문학세계에 대해 들었다. 의학계에선 양 원장을 ‘의학 추리소설가 1호’라고 부른다. 그동안 의사가 소설책을 낸 적은 있지만 추리소설은 양 원장이 처음이라고 한다.

양 원장은 “우리나라는 의학추리소설 분야의 불모지로 불릴 만큼 관련서적이 많지 않다”며 “동양인, 특히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의학추리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양 원장과의 일문일답.(※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

Q 어떻게 소설을 쓰게 됐나.

“미국엔 로빈 쿡(Robin Cook)이라는 유명한 의학추리소설 작가가 있다. 쿡은 본래 안과의사인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서 아예 작가로 전업했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동양적인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우리 정서에 맞는 의학소설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

Q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2002년 서울에서 천안으로 출퇴근을 하면서 시간이 많이 났다. 버스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3시간 가량이었는데 시간을 활용하고 평소 하고 싶었던 소설 집필에 대한 욕구도 작용을 했다. 퇴근을 해서도 줄곧 서재에 틀어박혀 집필에 매달렸다. 처음엔 아내에게 소설을 쓴다는 얘기를 못 꺼냈다. 낮에 일을 하고 밤 늦게까지 집필을 하면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걱정할 것 같아서였다.”(※서울에 살던 양 원장은 몇 년 전 아내, 두 아들과 천안으로 내려와 안서동에서 살고 있다)

Q 집필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물론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중간에 몇 번이나 그만두고 싶었다. 붓을 꺾고 싶다는 말이 맞는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뼈를 깎는 고통이 들 정도로 어려웠다. 전문작가가 아니다 보니 글 구성부터 전개는 물론 용어선택까지 벽에 부딪히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단 한번도 후회를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돌아보면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작가가 되기 위한 성장통이었다고 생각한다.”

Q 첫 번째 소설을 내고 난 뒤 감회는.

“첫 번째 소설 『클론아이』를 낸 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물론 만족할만한 수준의 작품은 아니었지만 ‘양희찬’이란 이름으로 책을 발간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뿌듯했다. 부족한 점이 많아 이후 수정본을 냈지만 처녀작이란 점에서 평생을 두고 간직할 작품이다.”

Q ‘작가 양희찬’에 대한 감회는.

“요즘은 ‘의사 양희찬’보다 ‘작가 양희찬’이 더 정겹다. 전문 작가들이 들으면 우습다고 할 수 있겠지만 오랜 시간 작가를 꿈꿔온 아마추어로서는 그만한 칭호가 없다. 의사모임에 나가서도 자주 불리다 보니 이젠 어색하지 않다. 서점 책장에 꽂힌 책을 보면 흐뭇하다. 얼마 전 병원을 찾은 환자가 책을 들고 와 사인을 해달라고 하더라. 기분이 좋았다.”(※양 원장은 2008년 대한의사협회 창립 100주년 기념 의사문학상을 수상했다)

Q 야심작인 세번째 소설은 어떤 내용인가.

“올 3월 발간된 『불멸의 제국』이다. 『클론 아이』『돼지꿈 살인』에 이은 세 번째 작품이다. 발해의 흥망성쇠를 다룬 작품으로 중국의 동북공정과 역사왜곡에 대한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시작했다. 극중 등장인물의 심리묘사에 중점을 두고 집필했다. 발해시대 고분에서 ‘가림토문자’가 발견된 이후 급격하게 전개되는 사건을 중심으로 주인공인 발해사를 전공한 한국의 교수(역사학자)와 교수를 취재하는 신문사 여기자가 발해역사를 파헤치는 과정이 묘사됐다. 북한과 중국 연변의 대학교수, 동북공정을 주도했던 중국 교수가 벌이는 치열한 논쟁도 나온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과 첩보전, 중국의 사과와 한국의 승리로 끝나는 결말이 이어진다.”

Q 집필을 위해 중국을 방문했다는데.

“4박5일간 연변과 선양 등 중국에 머물면서 발해사에 대한 연구를 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중국의 동북공정과 역사왜곡에 대한 심각성을 느꼈다. 『불멸의 제국』을 집필하면서 관련 서적도 많이 읽고 동료 의사들에게 의학적 지식도 도움 받았다. 문학적 자질을 키우기 위해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작품도 많이 읽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소설을 쓴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지금은 쉬고 있지만 집필에 대한 열정만큼은 식지 않았다. 앞으로 AI(조류독감)와 관련된 소설을 쓸 계획이다. 이미 정부가 보유주인 재난단계별 시나리오를 입수해 검토를 마쳤다. 원대한 꿈이긴 하지만 로빈 쿡과 같은 세계적 베스트셀러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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