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과거사 기본법안', 조사기구 권한 대폭 강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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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이 마련한 과거사 기본법 초안의 가장 큰 특징은 진상규명기구의 권한을 당초 예상보다 대폭 강화했다는 점이다. 공소시효 정지 등의 조치를 비롯해 조사기구에 압수.수색.검증영장 청구 의뢰권 등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검찰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조사기구의 영장 청구 의뢰를 수용해야 한다. 법안은 조사기구 소속인 위원.직원이 사법경찰관과 동행해 영장을 집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여당은 철저한 조사가 이뤄진 뒤에는 사면 등을 통한 '화해'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과거사 진상규명이 특정인에 대한 정치적 목적에서 실시되는 것이라는 의심을 의식한 때문이다. 여당 과거사 태스크포스가 13일 회의에서 "조사 종료 후 대통령에게 총체적 특별 대사면을 건의할 수 있도록 하자"고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 통신사실.금융거래 자료 요청 가능=법안은 조사기구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관계기관에 통신사실에 대한 확인자료나 금융거래정보 등의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여당은 이를 위해 금융실명거래법까지 손질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법안은 또 사법권과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동행명령권도 조사기구에 부여하고 있다.

관계 기관.시설.단체에 대한 조사기구의 자료.물품 제출 요구 대목도 강화됐다. 자료 제출을 거부하려면 사유를 구체적으로 소명해야 한다고 법안은 명시하고 있다. 특히 조사기구가 해당 소명에 대해 '이유 없음'이란 결론을 내리면 관계기관 등은 더 이상 정보공개를 거부할 수 없게 돼 있다. 심지어 국가안보와 국민화해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도 일단 조사기구에 자료 열람을 허용해야 한다. 열람 내용에 대한 공개 여부는 조사기구가 판단한다. 고발.수사의뢰권도 도입된다.

◆ 조사 후엔 사면.화해 추진=법안은 조사기구 산하에 진실위원회와 화해위원회 등 두 개의 소위원회를 두도록 했다. 진실위가 진상규명을 하면 화해위는 국민통합.화해를 도모한다는 것이다. 법안은 조사 결과 일부 범죄 혐의가 있더라도 국민화해와 민주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자체 판단될 경우 고발.수사의뢰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했다. 이 경우 관련 수사기관 등은 조사기구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법안은 또 조사가 끝난 사건을 지체 없이 대통령.국회에 보고하고 결과를 공표토록 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국가 안전보장과 국민화해.민주발전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자체 결정한 경우 보고서의 일부 내용을 공개하지 않을 수 있도록 했다.

반면 법안은 조사와 영장집행 등을 방해한 경우, 또 조사기구의 위원.직원을 폭행.협박했을 경우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등 강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정당한 사유 없이 동행명령을 거부할 때도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여당의 관계자는 그러나 "상당수의 위반사항에 대해서는 향후 논의과정에서 처벌이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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