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쁨] 충북 청주시 상당구 율랑동 최시선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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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교원 정기인사를 앞두고 있던 지난 2월 담임반 수업시간. 아이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교실을 나가려는데 반장이 다가왔다.

내일 오후에 시간을 좀 내달라는 것이었다. 난 속으로 '담임이 떠난다니 조촐한 음료수 파티를 하려나 보군…' 이라고 생각하고 쾌히 승락했다. 그런데 당일 반장과 몇몇 아이들이 오더니 어디로 가서 식사를 하자는 게 아닌가.

예상과 너무 달라 나는 펄쩍 뛰었다. 내가 완강히 거부하니까 반장은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사실은 교실에서 하려고 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저하고 몇몇이서 좀 모시려고 합니다. "

"아이고 뭘 나를 모시냐□ 니들이…. 밥을 산다면 내가 사야지. " 그러나 제자들의 요청이 워낙 강해 난 교직 11년만에 별일이 다 있구나 하면서 따라 나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식당에 들어서니 48명의 제자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치며 나를 맞는게 아닌가. 녀석들은 나를 깜짝 놀라게 하기 위해 수를 쓴 것이었다.

'맨날 속만 썩이던 놈들이 이런 생각을 다 하다니…. ' 나는 너무 감격해 아무 말도 나오지않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치자 몇몇이 일어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도 '울고넘는 박달재' 를 불렀다. 술은 원래 안되는 것이었지만 모두에게 한잔씩 따라주었다. 어디서 주도를 배웠는지 무릎을 딱 꿇고 두손으로 공손히 받쳐들었다. 술잔을 다 돌리자 조그만 선물을 내놓더니 스승의 노래를 불렀다.

'내가 지들한테 뭘 해준 게 있다고, 맨날 혼내주기만 했는데. ' 자리를 파하고 나오니 건장한 녀석들이 몰려와 나를 헹가래쳤다. 그러더니 48명 모두 땅바닥에 엎드려 큰 절을 했다.

교사가 되고나서 이런 감격은 처음이었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기분도 묘하거니와 땅바닥에 엎드린 제자들…. 나도 엎드려 절을 했다. 상당고 2학년8반 제자들아. 고맙다. 내 어디가서도 너희들의 깜짝쇼는 잊지 못할 것이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율랑동 최시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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