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길 다른삶] 3. 최태지와 문훈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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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국립발레단 최태지 단장과 유니버설발레단 문훈숙 단장은 외국에서 태어나 교육받은 해외파이고, 양대 발레단의 최연소 단장 기록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마흔을 전후한 나이지만 아직도 20대의 미모를 간직하고 있는 것도 비슷하다.

최단장이 취임한 후 저만큼 앞서가던 유니버설발레단과 실력격차를 좁히고 김지영.김용걸같은 스타를 키워내면서 두 사람은 싫으나 좋으나 비교 대상이 돼 왔다.

그만큼 서로를 의식할 수 밖에 없지만 두사람의 관계는 라이벌이라기보다 친구에 가깝다. 지난해 코리아발레스타 페스티벌 특별공연에서 한 무대에 선 것을 계기로 급속히 가까와져 가끔 서울 청담동에서 만나 식사하고 수다떨면서 스트레스를 풀 정도다.

먼저 전화하고 약속을 만드는 쪽은 최단장. 문단장이 발레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발레밖에 모르고 살아온 외골수형이라면, 최단장은 아무리 예술가라도 예술 이외의 자기 인생 있어야 한다고 믿는 개방형이다.

그래서 최단장은 끊임없이 새로운 세상을 향한 탐험을 한다. 새롭게 개발한 맛있는 식당에 문단장을 초대해 놀래키는 것도 그 탐험의 하나다.

이런 대조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가 바로 두 사람의 결혼이다. 잘 알려진 대로 문단장은 통일교 교주 문선명씨의 차남인 약혼자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1984년 영혼결혼식을 올렸다.

결혼과 동시에 남편 성을 따라 박훈숙에서 문훈숙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92년 시동생의 아들 신철이를 입양해 키우고 있다.

반면 85년 미국 유학 시절 지나가던 사람을 증인으로 세워 작은 교회에서 한살 연하의 남편과 즉흥적으로 결혼식을 올린 최단장은 첫 아이 리나를 낳고는 곧 무대를 떠났다. 미련 때문에 다시 몸을 만들어 87년 국립발레단에 정식 입단해 95년 은퇴할 때까지 주역무용수로 활동했지만 결혼 생활로 무용수 수명을 단축한 것이 사실이다.

두사람의 성격은 대표작에서도 잘 나타난다. 문단장은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89년 러시아 키로프발레단의 '지젤' 에 주역무용수로 초청받아 일곱차례나 커튼콜을 받았을만큼 국내외적으로 가장 '지젤' 다운 무용수로 손꼽힌다. 창백한듯 흰 얼굴과 가녀린 목선이 비극적인 지젤의 비극적인 캐릭터와 딱 들어맞는다.

지난해 유럽순회공연에서 '마치 땅에 발이 닿지 않는 듯 신비함을 갖춘 무용수' 라고 현지평론가들이 쓴 것처럼 실제로도 시골소녀 '지젤' 처럼 청순하고 여린 소녀 이미지다.

언론과 인터뷰를 할 때도 심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공연을 앞두고는 발레단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안 만날만큼 소심한 편이다.

반면 '국립발레단 창단 이후 가장 훌륭한 작품' 이라는 평을 이끌어낼만큼 '돈키호테' 로 이름을 날렸던 인물답게 최단장은 한번 마음먹으면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국립발레단에 도움이 된다면 누구든 만나고 술도 기분좋게 마시는 활동형이다.

집과 발레단만 오가는 문단장과 달리 최단장은 출근 전에 남편과 함께 골프연습장에서 스윙연습도 하고 날이 좋으면 필드에도 나가는 등 발레 외의 인생을 즐긴다.

이렇듯 관객들이 기억하는 대표작은 다르지만 두 사람 다 돈키호테' 의 키트리 역을 가장 좋아한다.

무용평론가 장광렬씨는 "최단장은 발레단과 자신을 적극 알리는 비즈니스맨같다면 문단장은 발레단 운영상 꼭 만나야 될 사람도 잘 만나지 못하는 내성적인 예술가" 라며 "발레단을 운영할 때도 이런 성격이 많이 반영되는 편" 이라고 말했다.

96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립발레단 홍보를 맡았던 임소영씨 역시 "최단장은 사람을 대할 때 한번 믿으면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만 반대로 실망하면 다시 보지 않을만큼 맺고 끊는 게 분명하다" 고 이야기한다.

최단장이 이처럼 한국과 일본식의 사고방식이 몸에 배었다면 문단장은 미국과 영국 등에서 교육받은 사람답게 선을 지키는 범위 내에서 적당하게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서구식 습관을 익혔다.

하지만 무엇보다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용수로서의 삶이다. 점차 공연회수를 줄여나가고 있기는 해도 문단장은 여전히 유니버설발레단의 간판 무용수. 최단장은 95년 현역에서 물러나 국립발레단 지도위원을 거쳐 96년 단장이 됐다. 이런 근본적인 차이가 두 사람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게 만든다.

문단장은 "최근 어떤 인사가 최단장만큼 열심히 대인관계에 신경쓰지 않는다고 심하게 꾸짖어서 마음이 불편했다" 며 "연습을 게을리할 수 없는 무용수 입장이라 사람을 만날 시간이 적지만 무대에서 내려오게 되면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만날 생각" 이라고 말했다.

'조각가가 재료를 깎듯 무용수는 자신의 몸을 만들어나가는 것' 이라며 '관객의 박수보다는 새로운 테크닉을 성공적으로 해냈을 때의 쾌감 때문에 춤을 춘다' 는 무대 위의 완벽주의자 문훈숙. '발레도 결국 관객이 없으면 소용없는 예술' 이라며 줄기차게 관객에게 다가서는 최태지.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다른 얼굴의 발레가 얼마나 잘 조화를 이루느냐에 한국 발레의 미래가 달려 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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