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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조급증 드러낸 저출산 종합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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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미래기획위원회가 주도해 내놓은 ‘MB 정부의 저출산 대응 전략’은 흡사 종합선물세트를 연상시킨다. 그간 각계에서 지적해온 관련 대책을 총망라했다. 일단은 정부가 기존에 펼쳐온 저소득층 중심의 금전지원 위주 발상에서 탈피해 좀 더 실효성 있는 정책을 펼 의지를 밝힌 건 환영할 만하다. 저출산 현상의 원인이 복합적인 만큼 그 대응도 다양한 차원에서 이뤄지는 게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설익은 대책을 충분한 검토 없이 발표부터 한 건 문제다. 자녀 양육부담 경감 대책으로 우선순위에 올려놓은 만 5세 취학 추진이 대표적이다. 이 안은 교육과학기술부 내에서조차 이견이 나올 만큼 논란이 많은 이슈다. 이른 나이에 취학시켰다가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아서 오히려 취학을 뒤로 미루는 가정이 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보육비를 줄이고 여성들의 사회복귀를 앞당기는 효과가 있다는 정부 설명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아이를 유치원 종일반에 맡기는 편이 학교에 보내는 것보다 맞벌이 부부에겐 더 도움이 된다. 퇴근시간까지 돌봐주는 방과후 학교가 활성화되지 않은 현재로선 하교 후 아이를 이 학원에서 저 학원으로 옮겨 다니게 하는 것밖에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셋째 아이 이상을 둔 다자녀 가구에 대해 대학 진학 시 우대하거나 부모의 정년을 연장해주는 방안 역시 논란의 여지가 많다. 지난해 출산율 통계를 보면 둘째, 셋째보다 첫째 아이의 출생 감소폭이 훨씬 컸다. 출산율을 높이자면 이미 두 자녀를 둔 가정이 셋째, 넷째를 낳도록 하는 것보다 젊은 남녀가 결혼과 출산을 꺼리지 않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게 더 시급하다는 얘기다.

그 해법은 이번 대책 속에 다 들어 있다.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게 가족 친화적인 기업 문화와 사회 분위기를 정착시키고 정부는 질 좋은 보육 서비스를 확대하면 된다. 문제는 말처럼 실천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예컨대 여성에게만 양육의 짐을 지우는 의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남성의 육아휴직 활용을 장려하는 방안만 해도 그렇다. 지난해 육아휴직자 2만9145명 중 남성은 355명에 불과했다. ‘장려’만으로 얼마나 늘지 미지수다. 북구처럼 육아휴직의 일부를 반드시 남자가 쓰도록 의무화하는 특단의 대책을 검토해 봐야 할 이유다. 남편이 자녀양육 등 가사 분담에 적극적일 경우 둘째 아이의 출산율이 눈에 띄게 높아진다는 게 선진국의 연구 결과다.

낙태 방지도 무조건 서두르는 게 능사가 아니다. 2005년 보건복지가족부 조사 결과 34만여 건의 낙태 시술 중 14만4000여 건이 미혼 여성에 대한 것이었다. 미혼모를 ‘싱글맘’이라 고쳐 부른다고 이들 여성과 자녀에 대한 차별이 사라지지 않는다. 아이 낳기를 종용하기 전에 다양한 형태의 가족에 대한 우리 사회의 포용성부터 키우는 게 순서다. 정부는 조급증을 버리고 이번에 내놓은 ‘종합대책세트’ 중 쓸 만한 것부터 뚝심 있게 추진해 나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