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분쟁 SOS] 예금 부당 지급의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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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종중의 공동 회장 겸 총무 A씨가 은행 지점을 방문해 창구 직원에게 종중 명의의 예금계좌 개설에 대해 문의했다. 은행 직원은 A씨에게 종중이 임의단체임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단체정관·등록증 등)를 제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이런 서류가 준비되지 않으면 종중 대표 개인 명의로 계좌를 개설하고, 도장은 공동 소유자 각자의 도장을 모두 사용해 계좌를 만든 뒤 통장과 도장을 서로 분리해 보관하는 방법도 있다고 안내했다.

며칠 후 종중의 공동 회장 B, C, D씨는 총무 A씨와 함께 다시 방문해 예금거래신청서의 예금주란에 ‘A’, 그 하단에 ‘○○종중’이라 쓰고 공동 회장 4인의 도장 4개를 날인한 뒤 이 계좌에 12억3000만원을 입금했다. 그런데 은행 측은 신청서에 부기된 종중명을 제외하고 ‘A’씨만을 예금주로 전산 등록했다. 그 후 15차례에 걸쳐 4인의 공동 명의 도장을 사용한 정상적인 인출(총 2억3000만원)이 이뤄졌다. 얼마 뒤 A씨는 은행의 다른 지점에서 이 계좌를 본인 명의 인터넷뱅킹 출금 계좌로 등록하고 37개월 동안 21회에 걸쳐 10억원을 타행으로 인출한 뒤 도주했다.

이에 종중 측은 해당 은행에 A씨의 불법 인출 금액을 반환하라고 요구했지만 은행 측이 이를 거절하자 분쟁조정신청을 했다.

금융감독원은 먼저 종중과 은행 간에는 A씨가 아닌 ○○종중에 예금 반환 의무를 이행하기로 한 묵시적인 합의가 있었다고 봤다. 은행 측이 종중이 예금주란에 종중 이름을 부기하고 공동 회장 4인의 도장을 함께 날인함으로써 A씨가 단독으로 예금을 인출하는 것을 제한하려 한다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일반 예금과 달리 인출에 제한이 있음을 표시해야 할 업무상 주의 의무가 있는데도 이 예금을 전산 입력할 때 인출 제한에 관한 어떠한 표시도 하지 않음으로써 A씨의 불법 인출을 방치한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또 종중 측도 예금계좌 개설을 안내받았는데도 개인 명의로 계좌를 개설했고 A씨가 장기간 불법 인출을 하도록 지휘 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과실이 있다고 인정했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은행 측이 종중에 불법 인출금액의 절반인 5억원을 반환하도록 조정 결정을 내렸고 두 당사자는 이를 받아들여 분쟁이 해결됐다.

자료:금감원 분쟁조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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