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67)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67) 미운정 고운정

앨런 세섬 미 국무부 핵(核)감시국장은 나와 토론을 벌이면서 왜 한국이 원자력을 통해 에너지 자립을 이룩하려고 애쓰는지 충분히 이해한 것 같았다.

불과 3일전 그가 미국서 데려온 6명의 핵 전문가들과 함께 에너지연구소(한국원자력연구소 전신)와 핵연료주식회사 시설들을 샅샅이 둘러보며 감시의 눈초리를 번득일 때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3일간 그와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틈 날 때마다 우리의 입장을 논리적으로 설명한 게 주효했다.

그는 모든 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기 직전 나에게 "미 국무부가 한국을 잘 몰라 오해하고 있는 게 너무 많다" 며 "미국에 가서 당신이 추구하고 있는 원자력 기술자립이 정말로 평화적 목적을 위한 정책임을 그대로 전하겠다" 고 말했다.

나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그동안 미국의 오해로 인해 우리가 추진했던 원자력 기술개발이 번번이 좌절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기에 그의 말은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정말 고맙다" 고 얘기했다.

그는 나의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미국인은 한국인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 왜 그렇게 모를까…" 라며 혼자 되뇌이더니 "내가 돌아가서 미국인들의 생각을 바꿔 놓겠다" 고 자신했다.

실제로 그는 미국에 돌아가자마자 한국에 대한 원자력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등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그뿐 아니라 미국의 대표적 원자력연구소 가운데 하나인 샌디아연구소로 하여금 나를 초청토록 해 주요 시설들을 모두 견학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솔직히 나는 1985년 가을 샌디아연구소로부터 초청장을 받았을 때 깜짝 놀랐다. 그곳은 수소폭탄 제조와 핵무기 실험 등을 전담하는 연구소이므로 좀처럼 방문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내가 그곳에 갔더니 핵무기 담당 부소장이 나를 안내하며 "당신이 한국인으로서는 이곳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 이라고 말해주었다.

나도 얼떨결에 그곳을 방문했는지라 "왜 나를 초청했느냐" 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 부소장은 "국무부의 지시" 라고 대답했다. 순간 세섬 국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지난번 한국방문을 계기로 완전히 태도가 달라져 만날 때마다 나를 극진하게 대접했다. 또 국무부 내에서 한국의 입장을 적극 옹호하는 대변자 역할도 했다.

이 기회를 빌어 밝혀야 할 게 또 한가지 있다. 내가 40명의 과학기술자들로 구성된 평가단에게 전권을 부여해 경수로(輕水爐)핵연료사업의 기술도입선을 결정하도록 단안을 내리는 데 큰 힘을 실어준 사람이 바로 김성진(金聖鎭.69)당시 과기처장관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기술도입선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때 하루는 조경목(趙庚穆.63.현대건설 고문)과기처차관이 나를 불렀다. 趙차관은 "아무래도 韓소장이 기술도입선을 혼자 결정하면 뒤탈이 날 우려가 있다" 며 "과기처장.차관, 동자부장.차관, 대통령경제수석, 경제기획원차관, 한전 사장 등을 한 자리에 모아 이들이 결정하도록 하라" 고 나에게 충고했다.

듣고보니 그럴듯해 나는 먼저 金장관을 찾아가 "趙차관이 이런 얘길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하고 의견을 구했다. 그러자 金장관은 갑자기 안색을 바꾸더니 "어느 나라 회사를 기술도입선으로 선정하든 나는 일체 관계하지 않겠다" 며 "아무 소리 하지 말고 韓소장이 소신껏 결정하고 혼자 책임지라" 고 단호하게 얘기했다.

그러더니 "다시는 이 문제로 나를 찾아오지 말라" 고 주의를 주었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알아 차렸다. 이눈치 저눈치 보지 말고 국가이익에 가장 도움이 되는 쪽으로 알아서 결정하라는 뜻이었다. 나중에 보니 그의 판단은 정말 옳았다.

한필순 전원자력연구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