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지역주의, 여성이 바꿀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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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봄이 성큼 다가섰다. 우리에게 봄을 알리는 첫 신호는 남쪽에서 올라오는 꽃소식보다 서해바다 건너 중국대륙에서 날아온 황사인 것 같다. 온 하늘을 뿌옇게 뒤덮고 우리의 시야를 가리는 황사는 봄을 기다리는 우리가 통과의례처럼 겪는 고역이다.

지금 총선을 앞둔 정치판에서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언어들이 황사처럼 우리 주변을 뒤덮고 있다. 황사의 시발점은 중국의 고비사막이지만 지역주의의 발원지는 그것으로부터 이득을 얻는 정치꾼들이다.

우리 국민은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의 더러운 말들이 황사처럼 산하를 뒤덮는 피해를 본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들의 정치적 야욕의 희생양이 돼야 하는가? 지역주의는 차별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녀문제와 유사하다.

공격적 지역주의는 남성의 특성 중 나쁜 점인 맹목적인 경쟁과 패권주의적 성격을 띤다. 지역주의에 기생하는 정치인들은 정견. 정책.능력으로 공정한 경쟁을 하기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패권을 장악하려는 목적에서 지역주의를 악용한다.

지역주의, 소위 이웃사촌이 좋고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들과 정서적인 공감과 신뢰가 형성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정치현상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최종의 원리가 되고 차별의 근원이 되는 것이 문제다.

그러면 이 차별적이며 공격적인 지역주의를 어떻게 타파할 것인가□ 그것의 상당부분은 여성들의 몫이다.

다행스럽게도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경쟁적이기보다 연대지향적이고, 남녀 차별의 피해자이면서도 공격적이기보다 포용과 배려, 평화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지역주의 타파에 여성들이 크게 기여할 수 있음이 감지될 수 있다.

서구뿐 아니라 한국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는 1960년대 이후 꾸준히 향상돼 왔으며 여성들의 정치참여 및 정치의식 수준도 매우 높아졌다.

최근 핀란드에서는 여성대통령이, 일본에서는 여성지사가 탄생했으며, 한국에서도 여성할당제가 법제화되고 여성의 지역구 공천자 수도 지난 15대 총선 때보다 2배 가까이 증가하는 등 국내외적으로 여성정치인들의 활동이 괄목할 만하게 성장했다.

여성들의 정치의식도 독립적이고 진취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클린턴을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것은 여성들이었다. 빌 클린턴의 자유주의적이고 여성친화적 정책이 여성들로 하여금 그에게 투표하게 한 것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정책보다는 인물위주로 투표한다든지, 여성들은 자신의 정치적 판단을 갖기보다 가족.친지.이웃의 의견에 좌지우지될 것이라는 선입견은 여성의 투표행태에 대한 최근 연구결과들에 의해 부정되고 있다. 여성들의 표가 정치인에 대한 냉철한 심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표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패권주의적 성향으로 치닫고 있는 지역주의적 정치행태는 여성들의 연대.배려.평화의 원리로 극복해 낼 수 있다.

이번 총선에서 여성유권자들이 지역주의에 철저하게 오염된 한국의 정치를 정화시킬 수 있는 가능한 방법은 세가지 정도. 첫째, 지역주의의 선동자.악용자에게 투표하지 않는 것. 둘째, 지역주의를 넘어서 바른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정치인에게 투표하는 것. 셋째, 장.단기적으로 연대.배려, 그리고 평화의 여성친화적 가치를 추구하는 후보들을 양성하는 동시에 그들에게 투표하는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 망국적 지역주의와 남성우월주의의 공통점은 그것이 차별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통한 이익의 추구에 있다. 따라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차별을 철폐코자 하는 여성들의 개혁운동은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효과적인 치료약이 될 수 있다.

여성운동에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과제가 하나 더 추가된 셈이다.

김현희 <한신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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