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현장] 소득세 내리면 부자만 덕 본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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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좀 지난 얘기지만,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정운찬 국무총리가 지난 10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내년으로 예정된) 소득세율 인하를 다시 검토했으면 좋겠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소득세 인하를 반대하는 듯한 발언이었다. 당시 기획재정부가 “예정대로 인하해야 한다”는 답변자료를 건넸으나 정 총리가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고 한다. 정 총리가 정부 공식 입장을 놔두고, 다른 얘기를 한 것은 적절치 않았다. 게다가 국회 대정부 질문은 개인 소신을 말하는 자리가 아니기에.

이번뿐 아니라 정부는 줄곧 야당의 ‘부자 감세’ 공세에 끌려다녔다. 그러는 사이 ‘소득세 인하=부자 감세’가 기정사실로 굳어졌다. 이에 고무된 야당은 인하 유예를 포함해 어떤 식으로든 손질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부 여당의원도 동조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소득세 인하가 부자 감세인지는 냉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소득세율은 올해와 내년 2년간 전 소득 구간에 걸쳐 2%포인트씩 내리게 돼 있다. 이에 따라 연봉 4000만원 근로자(이하 4인 가구 기본공제)는 연간 근로소득세가 53만원, 8000만원 근로자는 135만원 줄어든다. 여기서 정치권이 문제 삼는 것은 왜 고소득자가 감세를 더 많이 받느냐는 점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8000만원 근로자가 근소세를 더 많이 내고 있으니 똑같은 폭으로 깎아줘도 감세액이 커지는 게 당연한 이치다. 소득세 인하 후에도 여전히 8000만원 근로자는 연간 근소세로 4000만원 근로자(115만원)의 여섯 배 넘는 738만원을 내야 한다.

일부 야당 의원이 “서민 근로자의 호주머니를 털어 부자에게 감세 혜택을 준다”는 주장은 더더욱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이미 근로자의 절반 가까이는 면세점(免稅點) 아래여서 근소세를 한 푼도 내지 않고 있다. 무슨 호주머니를 턴다는 말인가.

소득세율을 일률적으로 2%포인트씩 내리는 것이니 특별히 누구를 봐주고, 누구를 홀대할 여지가 없다. 서민 근로자는 원래 내지 않던 근소세를 계속 안 내는 것이고, 중산층 이상 근로자는 그동안 내던 근소세에 비례해 세금 부담을 더는 것이다. 그뿐이다. 그런데도 소득세 인하가 부자를 위한 정책으로 둔갑한 것은 정치권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수치만 들이대며 세금을 편가르기에 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득세를 내려야 할 이유로 감세가 세계적 추세라는 거창한 말을 굳이 꺼낼 필요도 없다. ‘유리알 지갑’ 박탈감에 시달려온 말 없는 다수의 근로자는 예정대로 내년에 세금이 줄어 사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하는 마음뿐일 게다.

고현곤 경제정책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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