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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피랍선원 7명 '악몽의 16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지난달 23일 인도네시아 북쪽 해상에서 해적들에게 납치됐다가 16일 만에 구조된 파나마 국적 글로벌마스호의 한국인 선원 7명이 13일 부산으로 돌아온다.

선장 이홍석(48)씨 등 선원들은 전화통화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의 나날이었다" 며 해적에 붙잡혀 있던 악몽과 같은 날들을 증언했다.

선박이 말라카해협을 항해하던 2월 23일 오후 11시30분. 선장과 미얀마인 조타수를 제외한 선원 15명은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 때 수류탄과 기관단총.권총 등으로 무장한 해적 12명이 고속보트로 접근해 배에 뛰어올랐다.

선원들을 모두 깨워 선실 목욕탕으로 몰아넣었다.

곧 이어 또 다른 고속보트를 타고온 해적 30여명이 가세했다.

해적들은 선원들의 옷을 벗기고 수갑을 채웠다.

선장 李씨의 목에는 밧줄을 걸었다.

현금은 물론 가족사진 등 소지품까지 모두 빼앗아 갔다.

40여명의 해적들은 훈련 받은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글로벌마스호를 접수하고, 선원 몸 수색.감금 등이 순식간에 이뤄졌다.

선원들이 갇힌 목욕탕은 무장감시조가 밤새 지켰다.

해적들은 이튿날 오전 9시쯤 선원들의 눈을 천으로 가린 채 소형어선으로 옮겨태운 뒤 생선 창고에 4~5명씩 나눠 감금했다.

3시간쯤 뒤 눈을 가린 천을 풀어줬다.

그 때는 이미 글로벌마스호는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중무장한 해적 9명이 배 안에서 감시의 눈초리를 풀지 않았고 주변에는 어선 한 척이 빙빙 돌며 감시했다.

선원들은 푸석푸석한 쌀에 이상한 향기가 나는 소스를 얹은 식사를 하루 두끼씩 제공받았다.

그러나 맛이 이상한 데다 공포에 질려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2주일을 해적들의 감시를 받으며 그렇게 바다를 떠돌았다.

그 뒤 지난 7일 오후 10시쯤. 해적들은 조각배만한 1t짜리 목선에 선원들을 옮겨태운 뒤 약간의 물과 음식.기름을 던져주고 사라졌다.

주위에는 불빛 한점 없었다.

낡은 목선 바닥에는 바닷물이 스며들어 선원들은 쉴새없이 물을 퍼내야 했다.

무조건 동쪽으로 배를 몰았다.

동쪽으로 가야 우리나라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항해장비는 아무 것도 없었다.

해뜨고 해지는 방향이 유일한 나침반 구실을 했다.

죽음의 공포와 싸우며 표류한 지 사흘째이던 9일 밤.

탈진한 선원들의 시야에 멀리 불빛이 들어왔다.

태국 어선이었다.

선원들은 "놓치면 죽는다" 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배를 몰아 구조요청을 했다.

밧줄로 태국 어선에 목선을 묶었다.

태국 어선에 이끌려 태국 푸켓 인근 섬에 도착한 것은 10일 오후 1시쯤. 선원들은 "드디어 살았다" 며 서로 부둥켜안고 떨어질 줄 몰랐다.

부산〓정용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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