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 선전에 쏠린 일본의 눈초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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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일본의 중국 경계론은 최근 여러모로 구체화되고 있다. 경제쪽에선 선전 연구가 새삼 유행이다. 홍콩 위에 바로 붙은 경제특구 선전. 무슨 까닭에 일본 경제계가 이걸 놓고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일까. 근무지를 이탈해 직접 한번 가봤다.

주마간산(走馬看山)에 불과했으나 한마디로 쇼크였다. 이 엄청난 변화를 여태 모르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고 무식한 소치겠으나 아무렴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솔직히 선전에 대한 선입견은 한국의 60년대 마산수출지역 정도였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 20년 전 선진국의 허드렛일을 하청받아 인건비나 따먹던 그런 곳이 아니었다.

홍콩과 대만 투자가 홍수를 이루면서 완전히 세계최고.최대의 공업지대로 변모해가고 있었다. 멕시코 수출자유지역 티후아나 따위는 '저리 가라' 였다. 경제특구의 딱지가 붙은 선전만의 일이 아니었다. 북쪽으로 한시간 더 들어간 둥젠(東菅)이란 곳도 외국기업들의 러시현상은 선전 뺨칠 정도였다. 개방의 정책효과가 성공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증거다.

이 두지역에 진출한 외자기업은 무려 각각 1만4천개 정도씩. IBM이 5개의 공장을 차린 것을 비롯해 델.컴팩 등의 유명 컴퓨터메이커들이 줄을 잇고 있는가 하면 제록스.엡슨.리코.캐논 등의 프린터회사들은 몽땅 이곳으로 모여 있었다.

이리하여 세계에서 팔리고 있는 데스크톱 컴퓨터를 비롯해 프린터.팩시밀리 등의 주요 제품들의 60% 이상이 이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상상도 못했던 숫자들이다. 덩샤오핑(鄧小平)도 지하에서 이같은 성공에 깜짝 놀라고 있을 것이다.

국제적인 '큰놈' 들이 이처럼 몰려드니까 부품공급업체 조무래기들도 따라서 우르르 몰려든다. 그래서 컴퓨터 1대 생산에 필요한 갖가지 부품조달이 불과 1시간 반만에 해결된단다. 노동력.물류.부품공급 등 모든 사업환경이 세계 제1이 돼가고 있다. 그러니 세계의 기업들이 더욱 다투어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선순환의 가속화다. 더구나 홍콩.대만.중국이 드디어 하나의 중국인으로서 통합된 힘을 구사하기 시작한 현장임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세계에 널려 있던 화교들의 '21세기 총집합' 이다.

이러니 일본의 당황은 당연하다. 80년대 이후 일본의 전략은 이른바 국가별 분업화 하청전략이었다. 예컨대 도요타자동차가 엔진은 필리핀에서, 브레이크는 말레이시아에서, 그리고 조립은 태국에서 하는 식으로 코스트다운을 시도하고 경쟁력을 높여왔던 것이다.

그런데 선전-둥젠지역으로의 외국인투자 러시는 기존의 일본 전략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린 것이다. 지역별 하청을 통한 코스트다운의 개념을 넘어 세계에서 가장 스피디한 공업지대, 그것도 첨단기술제품의 종합생산 기지화돼가고 있는 점에서 더욱 가공스런 것이다.

한술 더 떠 여기도 벤처바람이 드디어 불어닥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실력을 닦은 겁없는 젊은 차이니스들을 데려다가 일확천금을 노리는 전주(錢主)들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사업 아이디어만 좋으면 돈 대주겠다는 전주들은 사방에 널려 있습니다. 보수적인 은행으로선 도저히 엄두도 못 낼 일들이 막 벌어지고 있어요. " 도쿄미쓰비시은행 선전지점장의 말이다.

외국으로부터의 공장이전의 차원을 넘어 이곳 자체에서 새로운 미래산업 창출마저 시도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인건비가 싸서도 아니다. 월 1백달러가 넘으니 다른 동남아국가들에 비해 오히려 비싼 편이다. 그러나 기업환경이나 전체비용을 따지면 이쪽이 훨씬 싸게 먹히고 편하고 좋다는 것이다.

일본의 걱정은 그렇다고 치고 우린 무언가.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늘 강조해 마지않는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 는 약속은 어찌 된 건가.

그러나 이 지역을 가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공허한 장담이었나를 금세 깨닫게 될 것이다. 사회주의 나라보다도 더 못한 자본주의를 하고 있음에야.

이장규<일본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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