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무서운 오바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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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둘째 사진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와 악수하면서 오바마는 45도가량 고개를 숙였다. 반면 원 총리는 꼿꼿이 서서 그를 맞았다. 그는 또 자신을 낮췄다. 미국 경제가 중국 덕에 살았다는 말도 스스럼 없이 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중국, 즉 G2의 리더십을 강조했다. 오바마의 의중을 읽은 원 총리가 손사래를 쳤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이틀 전 상하이에서 대학생들을 만나 중국과 미국이 협력해 국제문제를 해결하는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고 이 말은 전 세계 언론을 탔다. 오바마가 중국을 이미 미국과 대등한 반열에 올려버린 뒤였다. 이젠 후진타오 주석이 손사래를 쳐도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책임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게 됐다.

셋째는 오바마의 뒤태다. 만리장성 위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성 자락을 보며 사념에 잠긴 그의 모습이다. 장성에 오른 그의 첫마디는 “신비롭다”였다. 중화 문명의 정수에 대한 감탄이다. 그렇다면 그는 이곳에서 중화 문명의 신비와 탁월함만 봤을까. 아닐 것이다. 불가사의에 가까운 장성 축조에 동원된 민초들의 고통도 같이 봤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대의 봉건 성이 오늘의 중국과 맞닿아 있지 않나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여기엔 근거가 있다.

그는 바쁜 중국 방문 동안 광둥성 광저우에서 발행되는 ‘남방주말’라는 주간지와 인터뷰를 했다. 오바마는 왜 CC-TV나 인민일보 같은 중국의 간판 매체를 놔두고 조그만 지방지와 인터뷰를 했던 걸까. 알고 보니 이 주간지는 그동안 중국 사회 비리를 파헤쳐 당국에 숱하게 많은 수난을 당한 전력이 있었다. 그에겐 그 주간지가 진정한 언론이었다. 다음 날 인터뷰는 검열을 받고 잘려 나갔다. 오바마는 중국에 언론 자유가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중국 스스로 이를 인정하고 전 세계에 알리도록 멍석을 깔아 버렸다.

베이징 런민(人民)대 국제관계학원 진찬룽 부원장은 오바마 외교를 ‘책임 아웃소싱(責任外包)’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는 오바마에 대해 한마디 더했다. “대지약우(大智若愚)하고 가치부전(假痴不癲)하다.” 현자는 재능을 뽐내지 않아 어리석어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최형규 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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