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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사 왜곡에도 함께 대처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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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 11일 금강산 온정각 광장 앞 고구려 유적 세계문화유산 등록 기념 남북 공동 사진전시장에서 고구려 벽화무덤 사진들을 둘러보고 있는 북한의 학자들. 오른쪽 가운데가 북한의 국어학자인 김영황 교수. 금강산=양광삼 기자

북한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데는 북한 당국이 북-중국 간 정부 차원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고 판단하고, 이제 이 문제를 학술적인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키로 한 방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학술대회를 성사시킨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의 고위 관계자는 "우리는 '조용한 외교'를 통해 중국 측에 우리의 입장을 충분히 전달했다"며 "어렵게 마련된 이번 행사가 남북 학자들이 공동 연구를 통해 중국의 역사왜곡에 공동 대응해 나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자가 정부 차원에서 고구려사 왜곡에 대응했음을 언급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학술대회와 사진전시회에 참석한 북한 역사학자들은 고구려가 주권국가였음을 밝히고, 앞으로 남북이 힘을 합쳐 우리 민족의 역사를 함께 지켜 나가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남측 토론자인 서영수 단국대 역사학과 교수는 "남북 학계가 고구려를 화두로 상호 이해와 실천이 가능한 부분부터 공동연구와 공조체계를 시작해 민족 공동체와 민족 정체성 문제 등으로 연구를 확대해 나가자"며 정치 현안에 영향을 받지 않는 정부 차원의 상설 연구기구를 설립하자고 제안했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남측 대표단 194명과 북측 90명, 금강산 관광객 1500여명은 두시간 여에 걸친 학술회의를 지켜보고 온정각 문화회관 앞에 마련된 고구려 고분벽화 사진들을 둘러봤다. 남북 역사학자협의회의 강만길 남측 위원장과 허종호 북측 위원장 등 남북 대표단은 손수호 조선고고학회장의 소개로 안악1호 무덤과 덕흥리 벽화 무덤 등 고구려 벽화무덤을 담은 사진 70점을 꼼꼼히 둘러보며 고구려사 연구를 위한 남북 공조의 필요성을 되새겼다.

북측의 적극적인 분위기는 행사 이틀째인 12일 오전 금강산 호텔에서 진행된 남북 역사학자 간담회에서도 이어졌다. 채태형 사회과학원 발해사 연구실장은 "발해는 고구려 땅에서 고구려 문화를 발전시킨 고구려의 계승국"이라며 "앞으로 고구려사와 함께 발해사에 대한 그 어떤 왜곡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고 북과 남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간담회에는 남측에서 70여명, 북측에서 30여명의 역사학자들이 서로 인사를 나눴고, 고구려 건국 시기를 놓고 질의응답을 벌이기도 했다.

금강산을 찾은 남측 관광객들도 이번 행사에 의미를 부여하며 깊은 관심을 보였다. 마라톤 대회 참석차 금강산을 방문한 이효덕(여.35.서울 상계동)씨는 "최근 중국이 고구려사를 왜곡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이 공동으로 고구려 관련 행사를 치르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면서 "이러한 행사를 더 자주 열어 우리의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측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한 고진화(한나라당) 의원은 "남북한이 민족 정체성을 찾기 위해 벌이는 문화유산 연대 작업은 경제교류 협력과 더불어 남북교류 프로그램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영역"이라며 "역사 공동연구와 인식의 공유를 통해 진정한 민족교류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12일 김정숙 휴양소에서 환송 오찬을 마친 남북 역사학자들은 삼일포를 함께 돌아본 뒤 내년에 평양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행사를 끝마쳤다.

◆ 금강산 특별취재단=길정우(통일문화연구소장).배영대(문화부), 정창현.정용수(통일문화연구소), 양광삼(사진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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