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엄마가 아이 기르는 건 인간의 기본권”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www.kumsn.org)’는 국내에 보기 드문 미혼모 권익옹호 단체다. 2007년 설립 이래 각종 관련 사업과 연구를 후원해 왔다. 올 들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미혼모 관련 국민의식조사·복지실태연구도 이런 결과물이다. 이 단체를 설립한 이는 미국 코네티컷에 사는 안과의사 리처드 보아스(59·사진) 박사다. 세 딸 중 막내 에스터를 1980년대 말 한국에서 입양한 아버지다. 중앙SUNDAY의 e-메일 인터뷰 요청에 그는 장문의 답변을 보내 왔다. 재단을 설립해 미국인 가정에 입양비용을 지원할 만큼 국제입양을 지지했던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상세하게 담았다.

입양에 대한 과거 스스로의 생각을 그는 ‘구원자 정신’이라고 표현했다. “불확실하고 참담한 미래로부터 아이를 구원해 보다 나은 새로운 삶을 선사한다”는 맥락이다. 미국 입양단체 관계자들과 함께 2006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할 당시도 그랬다. 그는 “일정에 앞서 오대산에 갔다가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아이들을 봤다”면서 “(한국에서 입양한) 내 딸이 한국에 머물러 있었더라면 이런 말쑥한 차림에 행복한 아이들 그룹에는 끼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진솔하게 들려줬다.

하지만 곧이어 그는 생각도 못한 감정을 겪게 된다. 미혼모가 양육을 포기한 아기들을 직접 안아보고 만나본 것이 그 시작이다. 그는 “이 여행이 내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면서 “정말로 영향이 컸던 건 미혼모 시설에서 열 명 남짓한 여성을 만났던 일”이라고 돌이켰다. “18~24세에 모두들 미혼으로 임신 중이었고, 하나같이 이미 아이를 포기한다는 데 동의한 상태였어요. 순간, 깨달았습니다. 20여 년 전에 내 딸의 엄마도 이 여성 중 하나였을 거라는 걸.”

그는 “내 자신의 맹점(Blind Spot)에 부딪혔다”고 안과의사다운 비유를 썼다. “이전까지 저는 한국사회의 미혼모들의 상황을, ‘엄마와 아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관계를, 입양 중에도 국제입양이 이들에게 가져올지 모르는 부정적 결과를 보지 못했던 겁니다.” 그는 특히 한국 미혼모의 70%가 양육을 포기하는 점에 주목했다. “미국은 2%예요. 제 스스로 물었죠. 왜 이런 차이가 생겨야만 하는 걸까. 아니 더 근본적으로, 아이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엄마가 원하기만 한다면 아이를 양육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옳지 않을까.” 미국에 돌아가서도 물음은 이어졌다. “내가 미혼모와 그 자녀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 뭘까. 아이를 키우려는 여성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 만약 내 딸이 지난주 태어났다면, 내 딸과 내 딸을 낳은 엄마를 위한 최선은 무엇이었을까.”

네트워크를 설립한 이후 그는 여러 차례 한국을 찾았다. 요즘도 하루가 멀다 하고 서울의 담당자와 연락을 주고받는다. 한국 미혼모들이 양육을 포기하는 주요 원인으로 그는 “미혼모에 대한 가족·사회·정부의 낙인”을 꼽고 있다. 미국·영국·호주 등과 비교해 편견만 크고 지원은 미미하다는 얘기다. 여기에 “유교적 문화, 빈곤에 대한 두려움, 입양에 대한 홍보”도 양육 포기에 작용한다는 시각이다. “입양 자체에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무엇이 엄마와 아이를 위한 최선인지가 초점이죠. 미혼모가 자신과 아이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상담과 지원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는 엄마들이 자신의 아이를 키우는 것을 “인간의 기본권”이라면서 “아이를 키우려는 미혼모를 위한 재정·교육·의료·주거·보육 지원은 물론 원치 않는 임신을 막는 교육까지 고루 필요하다”고 했다. 25년간 안과의사로 일했던 그는 2000년대 초 은퇴, 현재 저소득층 암환자를 위한 재단 등 지역사회 인도주의 활동을 펴고 있다.

한국에서는 앞으로 만들어질 가칭 ‘한국미혼모가족협회’도 지원할 계획이다. 그는 자신의 활동을 “한국사회가 독자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촉매역할을 하려는 것”이라며 “미혼모와 그 아이들이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대우받기를, 제가 입양한 딸의 어머니가 누리지 못했던 기회를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했다.

이후남 기자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