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아리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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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호 02면

뮤지컬 ‘영웅’을 봤습니다. 안중근 의사와 그의 거사를 다룬 작품입니다. “爲國獻身軍人本分(나라 위해 몸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라며 대한 남아의 기개를 만방에 떨친 인물. 진정한 장부(丈夫)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보지 못하던 모습이었죠. 그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무대가 암전된 순간,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연출을 맡은 윤호진 에이콤 대표는 “관객들이 이 대목에서 이렇게 감동할 줄 미처 생각지 못했다”고 털어놓았죠.

이 진지하고 뭉클한 작품에 슬쩍 숨통을 틔우는 것은 아리랑입니다. 이토가 탄 기차를 채가구 역에서 기다리던 우덕순과 조도선. 솜털이 일어설 정도로 긴장된 순간에 우덕순은 문득 아리랑 한 자락을 꺼내 듭니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애써 외면하던 냉정한 조도선이 기어이 함께 춤을 추는 대목(사진)에 이르면 객석에서는 폭소가 터지고 어느새 어깨춤이 물결 칩니다. 슬프면 슬픈 대로,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긴장 속에서도 웃음을 주었던 노래, 아리랑.

얼마 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2009 아리랑 세계화 국제심포지엄’이 열렸습니다. 『컬처 코드』의 저자 클로테르 라파이유 교수는 “아리랑에는 이별, 그리움, 절대 포기하지 않으려는 정서가 있다”고 지적했죠. 노르웨이 출신의 재즈 보컬리스트인 잉거마리 군데르손도 “아리랑의 열린 멜로디는 인간의 깊은 감정을 반영하고 국가에 대한 깊은 사랑과 과거의 아픔, 미래의 희망을 모두 표현하고 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습니다.

2002년 독일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 선정위원회’가 열렸는데 여기서 82%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은 노래가 바로 아리랑이라고 하죠. 삶이 고단하다면 조용히 한번 읊조려볼 일입니다. 어느새 어깨가 들썩여질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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