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과학으로 자연을 미적분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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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호 05면

1 Colour experiment no. 7 (360 colours), 2009, Oil on canvas, 180 diameter

지하 3층 전시장으로 내려가면 기묘한 분위기의 방이 있다. 정육점 냉동실 앞에 걸려 있음직한 투명 비닐 커튼 조각을 헤친다. 농도 짙은 안개가 틈새로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안갯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초록 형광등의 빛을 가득 머금은 빽빽한 초록의 공간이다. 시간도 공간감도 잠시 사라진다. 앞으로 가본다. 약간 노란색의 공간인 듯 싶더니 이제는 다시 빨간색 천지가 된다. 안개는 그대로인데 내가 움직이니 초록이 됐다 빨강이 됐다가 한다.

덴마크 작가 올라푸르 엘리아손(42)의 ‘보색 차트(Complementary colour chart)’란 작품이다. 공간과 색은 그가 천착해온 주제 중 하나다. 북유럽의 백야(白夜)는 작가에게 빛을 보는 새로운 시선을 가져다 주었다. 그는 색을 잘게 쪼갠다. 일곱 빛깔 무지개보다 더 세밀하게 빛을 미분한 작가는 이를 고스란히 캔버스에 옮긴다. 이름하여 ‘색채 실험(Colour experiment)’이다. 1나노미터 단위로 섬세하게 측량된 360가지 다른 색을 1㎝씩 칠한다(‘색채실험’ no.7). 가시광선을 2차원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를 중심으로 사이사이에 각각 흰색(‘색채 실험’ no.6)과 검은색(‘색채 실험’ no.5)을 칠해본다. 그리고 어떤 느낌이 드는지 관람객에게 묻는다.

2 Colour experiment no. 6 (180 colours with white), 2009, Oil on canvas, 180 diameter

그는 이렇게 자연을 미분한다. 쇠파이프를 이리저리 엮어 놓고 그 사이에 물을 흘린다. ‘폭포(Waterfall)’다. 쇠파이프 몇 개가 순식간에 장대한 계곡과 자리를 바꾼다. 미니멀리즘의 완벽한 구현이다. 뉴욕 브루클린 다리 아래 등에 설치했던 대형 인공폭포도 여기에 뿌리를 둔다.

하나하나 세심하게 분해한 자연을 그는 다시 적분한다. 마치 꿀벌의 집을 연상시키는 문양을 이어 붙여 건물 한 면을 거대한 창틀로 만든다. 독특한 기하학적 문양으로 벽을 만들기도 했다(‘Quasi Brick Wall’). 그 무늬는 적당히 뭉툭하고 적당히 날카롭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지는 이유다.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 덴마크관을 장식한 그의 ‘La Situazione Antispectiva’는 마치 거대한 홍두깨 혹은 도깨비방망이 같다. 그가 찾아낸 기하학적 무늬를 이리저리 붙여 만든 3차원 공간이다.

3 Colour experiment no. 5 (180 colours with black), 2009, Oil on canvas, 180 diameter, Courtesy the artist and P K M GALLERY 2009 Olafur Eliasson

그의 이런 작업은 수십 명의 건축가·과학자·색채전문가와 함께 이뤄진다. 예술의 창조에는 과학과 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과학의 연구 결과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사람이 바로 엘리아손이다. 올해 ‘4학년 2반’인 그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정력적인 작품 활동으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지금까지 해온 결과물을 살펴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다.

2003년 런던 테이트 모던 터빈홀에 설치한 초대형 작품 ‘인공 태양’은 2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을 불러모았다. 사람들이 바닥에 누워 건물 천장에 ‘떠있는’ 태양을 바라보는 작품이다. 석양에 맞춰 거대한 인공 태양을 건물 사이에 설치해 놓고 두 개의 태양을 연출하는가 하면(‘Double Sunset’) 강물에 초록 염료를 풀어 사람들에게 시각적 충격을 주기도 했다. 또 실내 공간에 구름다리를 설치하고 바닥에는 물을 고이게 한 뒤 안개를 뿜어 색다른 공간감을 준다. 그가 ‘유사 자연(Artificial Nature)의 창조주’라 불리는 이유다.

이번 전시에는 대형 설치물은 없지만 색과 빛을 통해 자연을 분석하려는 그의 시도가 담긴 작품들을 볼 수 있다. 2년간 고심해 올해 처음 선보인 신작들이다. ‘당신의 공유공간’(Your shared space)은 색을 3차원적으로 표현한 작품. 반원 모양 거울을 흰 벽에 직각으로 붙인 뒤 물감의 3원색과 이들의 보색 3색 램프에서 나오는 빛을 거울에 쏜다. 빛의 파장 차이와 반사로 인해 거울에 반사되는 면과 반대쪽 그림자가 지는 면은 전혀 다른 빛의 스펙트럼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럼에도 뭔가 허전하다면 전시장에 마련된 그의 커다란 도록을 놓치지 말고 읽어보자. 그가 지금까지 해온 작품세계가 거대한 우주처럼 펼쳐진다. 그의 다음 번 작품은 어떤 것일까. 그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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