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정교하던 판다의 발가락, 편리한 ‘드보락 자판’이 도태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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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진화경제학
마이클 셔머 지음
박종성 옮김, 한국경제신문
513쪽, 2만5000원

경제는 생물이다,라고 흔히들 말한다. 제법 이름 날리는 경제학자나 경제 관료들도 더러 입에 올리는 얘기다. 주로 정밀한 경제 이론의 틀을 벗어난 돌발 사태가 벌어졌을 때, 변명처럼 꺼내는 말이기도 하다. 한데 경제학의 눈으로 보자면, ‘경제=생물’이란 말처럼 이율배반적인 등식도 없을 테다. 어지러운 수식을 동원해가며 경제엔 예측 가능한 법칙이 있노라 떠들었던 게 바로 정통 경제학이니까.

하지만 정통 경제학은 미국의 서브 프라임 사태와 같은 비합리적 시장 상황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다. 합리성과 균형의 잣대론 미국 시장에서의 작은 요동이 글로벌 경제 위기로까지 번진 것에 대해 해명하기란 어렵다. 그러니 경제는 생물 어쩌고 하며 발뺌을 하곤 하는 게다.

진화생물학자인 저자는 그러나 ‘경제=생물’이란 등식에 주목했다. 예측 불가능한 시장에 대한 변명거리가 아니라 경제학의 핵심으로 이 등식을 불러들였다. 시장 경제는 물리학의 세계처럼 질서정연하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경제가 생물이라면, 생물학적 관점에서 경제를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화경제학’이란 학문의 틀은 그렇게 빚어졌다. 경제의 진화 역시 생물의 진화와 구조적인 유사성을 띄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책은 경제를 진화·발전하는 복잡한 적응 시스템으로 간주한다. 경제도 생물처럼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진화해가며 성장·학습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제학의 ‘경로 의존성’이란 개념은 진화생물학과 묘하게 포개진다. ‘경로 의존성’이란 특정 전략을 채택하는 사람이 많으면 균형이 그쪽으로 쏠리게 된다는 이론이다. 더 나은 구조를 가지고 있어도 경로 의존성이 낮을 경우 시장에서 퇴출된다는 것이다.

‘쿼티 컴퓨터 자판’에 비해 훨씬 정교했던 ‘드보락 자판’이 시장에서 외면당한 것이 좋은 예다. 저자는 판다의 진화를 예로 들며 경제학과 진화생물학의 유사성을 살핀다. 판다의 엄지발가락은 원래 오밀조밀했지만, 대나무 잎사귀를 훑어 먹기에 편하도록 투박하게 변화됐다. 정교함이 무력화되곤 하는 시장의 경우와 딱 맞아 떨어진다.

책은 이와 유사한 다양한 경제적 진화 현상을 심리학·뇌과학·행동경제학 등의 메스로 집중 해부한다. 그러면서 생물학적 진화가 그랬듯, 진화하는 시장의 방향을 인간이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도탄에 빠진 시장을 살릴 해법을 진화생물학의 눈으로 모색했다. 종종 예측의 실패를 거듭했던 정통 경제학의 구멍을 넉넉히 메워줄 책이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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