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엿보기] 美'쇼큐멘터리' 퇴조 조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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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방송사가 백만장자라고 내세운 남성의 신부감을 마치 미인대회하듯 뽑아 물의를 일으킨 폭스TV프로그램 '누가 백만장자와 결혼하고 싶나(Who Wants to Marry a Multimillionare)' 를 계기로 미국 방송가에 '쇼큐멘터리' 장르가 크게 퇴조할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중반 쇼큐멘터리를 처음 도입한 장본인이기도 한 폭스TV는 '백만장자' 로 소개된 신랑감 릭 로웰이 예전에 여자친구를 폭력으로 위협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선발된 신부감이 신혼여행 후 결혼을 무효로 하고 싶다고 밝히는 등 물의가 이어지자 최근 뉴욕타임즈 등 미국언론에 이같은 프로그램을 더 이상 만들지 않을 뜻을 밝혔다.

충격 다큐멘터리(shoking documentary)' 의 줄임말인 쇼큐멘터리는 허구가 아닌 실제의 충격적 장면들을 소개하는 TV프로그램. 90년대 중반 당시 네트워크 방송사 간의 시청률 경쟁에서 뒤쳐지던 폭스TV는 경찰과 범인의 총격전, 자동차 충돌 사고, 동물의 인간 습격 등 충격적 내용의 실제 화면을 방송,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로 광고주의 주요 타킷인 젊은 남성 시청자를 끌어 모을 수 있는 쇼큐멘터리의 인기는 곧 CBS등 다른 방송사로도 번져나갔다.

쇼큐멘터리가 '충격' 과 '실제' 의 합성하는 방식도 다양해졌다. 몰래카메라 역시 '리얼리티 스페셜' 이라고도 불리는 쇼큐멘터리의 주요 기법 중 하나. 직장상사·부하직원의 극단적 갈등이나 부부의 외도를 포착해 방송하기도 했다. 이같은 프로그램이 선정성·폭력성 면에서 문제가 있으리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이미 지난 98년 네트워트 방송사들의 기금으로 진행된 UCLA대의 연구보고서가 "대다수 프로그램들이 한결 조심스런 태도로 폭력을 다루는 반면, 유독 리얼리티 스페셜은 예외" 라고 경고했을 정도다.

결국 이번 백만장자 결혼쇼로 대망신을 한 폭스TV는 성형수술 실패 사례를 다룬 프로그램 등 50~70만 달러를 들여 제작을 끝낸 쇼큐멘터리들도 방송 포기를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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