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베를린영화제 최우수작품상 앤더슨 감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올해 베를린영화제 최우수작품상(황금곰상)을 수상한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매그놀리아' (국내 개봉 4월초 예정)는 이달 말 열리는 아카데미에서도 최우수 남우조연(톰 크루즈). 최우수 주제가(에이미 만).최우수 각본상 등 3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있다. '황폐한 인간 관계 속에서도 잃어버릴 수 없는 사랑' 이라는 주제를 참신한 형식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땄다.

'매그놀리아' 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이런 저런 '마음의 상처' 를 가진 9명의 인물들이 서로 얽혀 들어가는 이야기를 모자이크 식으로 구성했다. 제목의 원뜻인 '목련' 이 가진 여러 빛깔만큼, 다채로운 인간의 운명이 무지개처럼 펼쳐진다.

특히 무성 영화와 기록 영화 스타일 등을 빌려 시작되는 도입부는 그 현란한 기교로 입을 못 다물게 한다. 하지만 후반부의 안이한 '화해' 에 대해 감독이 너무 도덕적으로 흐르지 않았냐는 비판도 나왔다.

어떻든 앤더슨은 '부기나이츠' 에 이어 '매그놀리아' 로 입지를 확실히 함으로써 스물 아홉의 나이로 '세계적인 감독' 의 반열에 올랐다. 스스로 '내 유전인자에는 영화가 새겨져 있다' 고 너스레를 떨만큼 그는 타고난 영화광 출신이다. 그래서 '제2의 타란티노' 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를 다루는 재치나 기술에서는 몰라도, 사회와 인간을 보는 깊이는 타란티노를 앞서는 듯 싶다. 어떻든 그는 미국 젊은 감독들이 결여했다고 지적 받아온 지성과 철학을 갖추고 있어 당분간 세계 영화계의 관심권 안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매그놀리아' 는 영화 후반 하늘에서 우박처럼 쏟아지는 '개구리 비' 장면이 충격적이다. 이번 베를린 영화제에서도 그는 가는 곳 마다 '개구리 비' 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시달려야했다.

- '개구리 비' 를 내릴 때 혹시 당신이 신이 된 듯한 느낌을 가진 건 아니었나.

"그 장면에서 관객들이 대단한 정서적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하다. 그만큼 디지털 효과가 뛰어났다. 개구리들은 대부분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것이다. 약 1백만마리 정도 될 거다. 그 장면은 구약에 나오는 재앙이나 징벌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사실 고양이나 개를 택할 수도 있었지만 개구리가 비용이 쌀 것 같아 택했을 뿐이다. 실제로 '개구리 비' 가 영국에서 있었다고 한다. 회오리나 폭풍 같은 기후 변화에 의해 생긴다고 들었다. 신이 된 듯한 느낌? 아마 개구리를 만들어 낸 컴퓨터 그래픽 전문가들은 그런 느낌을 가졌을 지 모르겠다."

- 영화에 등장하는 아버지와 아들, 딸들에 관한 얘기다. 이들은 죽음에 임박해 서로 화해한다. 이런 손쉬운 화해는 이제 스물 아홉살 먹은 당신에게 너무 도덕적이지 않나.

"영화 속 인물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편에 서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걸 도덕적이라고 부른다면 나로서는 어쩔 수 없다. 나는 진실된 것, 사랑을 향한 갈망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그건 도덕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게 아닐까. "

- '여성을 유혹하는 법' 강사로 나오는 톰 크루즈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관객들이 '매그놀리아' 를 톰 크루즈의 영화로만 볼까 걱정스럽지 않나.

"영화의 본질과 관련된 어떤 부분에서 '톰 크루즈의 영화' 인 건 사실이다. 누군가 톰 크루즈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영화라고 말한다면 어느 정도 맞는 얘기다. 사실 제작 과정에서 매스컴이 톰 크루즈에게만 관심을 집중한다면 영화가 순수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걱정한 적도 있다. 그런데 그건 기우였다. 기자회견이나 인터뷰에서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게 개구리에 대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성공한 것 아닌가."

베를린〓이영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