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가득히' 리메이크한 영화 '리플리' 4일 개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보트를 수리하기 위해 닻을 끌어 올리자 밧줄에 끌려 수면 위로 서서히 떠오르는 남자의 시체. 그 순간, 완전 범죄 뒤에 올 '달콤한 인생' 의 꿈에 젖어 있던 알랭 들롱의 절망에 찬 처연한 표정. 르네 클레망 감독의 명작 '태양은 가득히' (1960년)는 이 마지막 장면처럼, 부(富)와 사랑을 갖지 못한 젊은이가 부호의 아들을 죽인 뒤 가짜 부호 행세를 하려다 실패한다는 얘기였다.

오는 4일 개봉하는 '리플리(원제 The Talented Mr.Ripley)' 는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원작을 토대로 '태양은 가득히' 를 리메이크한 영화다. '잉글리쉬 페이션트' 를 만든 앤소니 밍겔라 감독은 40년의 세월만큼이나 영화에 다른 색을 입히고 있다.

낮에는 호텔 보이, 밤에는 피아노 조율사로 일하는 리플리(멧 데이먼). 인생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만 특별한 기회도, 행운도 잡지 못한 채 허송세월하던 그에게 어느 날 운명이 손짓한다.

파티에서 만난 큰 선박회사 소유주가 망나니 아들 디키(주드 로)를 이탈리아에서 찾아오라고 부탁한 것. 남의 사인을 위조하고 거짓말을 그럴 듯하게 포장하는 능력을 가진 리플리는 이탈리아로 가기 전 디키의 정보를 일일이 수집한다. 디키가 좋아하는 재즈 음반을 듣고, 프린스턴 대학 출신으로 디키와 동창이라고 속인다. 어느새 디키의 연인 마지(기네스 팰트로)와도 친해진 리플리. 자신도 상류사회의 일원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진 그는 점점 디키를 닮아간다. 그러나 방탕과 쾌락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탐탁치않게 여기는 디키에게 모멸을 당한 리플리는 배에서 노로 그를 죽이고 도피한다.

밍겔라 감독은 "다른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의 보편적 속성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에게 실망해 변신을 꿈꾼다" 고 말했다. 영화 마지막에 리플리가 '나의 어두운 내면으로 들어간다' 고 말할 때 분명해 지듯이 밍겔라 감독은 이 영화가 인간이 생래적으로 내장한 어두운 욕망에 관한 이야기 이기를 바란 것 같다.

'태양은 가득히' 가 못 가진 자의 가진 자(여기에는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성적(性的) 분배의 문제도 포함된다)에 대한 분노, 사회적 계급 의식을 분명히 새기고 있다면 '리플리' 는 탈사회적이고 그 만큼 심리적인 색채가 진하다. 후반으로 갈수록 영화의 힘이 빠지는 건 두 영화의 바닥에 흐르는 이런 관점의 차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은 듯하다. 4일 개봉.

이영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