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아리스토텔레스의 아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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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아이들
원제 Aristotle’s Children
리처드 루빈스타인 지음, 유원기 옮김
민음사, 464쪽, 2만원

아리스토텔레스의『시학』에는 책장마다 맹독성 극약이 발라져 있었고, 그것을 읽은 사람은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중세 엄숙주의의 질서를 지키려했던 호르헤 수도사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접근금지’의 장치를 해놓은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의 이 매력적인 모티브를 구체적인 역사로 읽는다면 더 흥미롭지 않을까? 역사 논픽션 『아리스토텔레스의 아이들』은 그에 대한 답이다.

이슬람 미술과 스페인 문화가 어우러져 도시 전체가 아름답게 빛나는 1136년 톨레도. 여기서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 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번역하고 있었다. 중세적 질서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또 세계가 지금처럼 인종과 종교 분쟁으로 얼룩지지 않은 명장면으로 이 책에서는 묘사된다. 여기에서 드는 의문 하나. 로마 제국 멸망 뒤 서유럽에서 무려 1000년 동안 잊혀졌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이 어떻게 이슬람 세계에서 먼저 발견되었을까?

이 책은 이 ‘망각의 역사’를 복구한다. 십자군 전쟁으로 이슬람 세계를 접하기 시작한 서유럽인들에게서 일찌감치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과학과 철학을 흡수한 이슬람의 발전된 문명은 충격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서구가 이슬람을 통해 그리스 철학을 수용한 것을 오랫동안 학자들이 쉬쉬해온 이유는 뭘까? 저자 루빈스타인은 그 이유를 문화적 우월주의, 즉 ‘미개한’ 다른 민족의 사상이 자기네 사상의 원류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유럽인들의 오만함에서 찾고 있다.

상식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재발견은 유럽이 르네상스로 이동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 아리스토텔레스로 촉발된 이론 투쟁은 걷잡을 수 없는 산불이 되어 유럽을 휩쓸었는데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세속 군주들의 정치적 계산과 걸출한 인물들 간의 경쟁 스토리, 그리고 중세 대학교의 발전을 둘러싼 갈등이 긴박하게 펼쳐진다. 저자는 야사와 정사를 넘나들며 독자의 흥미를 끄는 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책의 난이도는 만만치 않지만, 해독을 못할 정도는 아니니 교양서로 훌륭한 편이다.

무엇보다도 저자의 미덕은 아벨라르, 토마스 아퀴나스, ‘오컴의 면도날’등 중세의 핵심들을 고대와 현대를 잇는 키워드로 재해석한 데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적인 사고 체계는 기독교적 계시 중심의 중세에는 너무나 위험한 도전장이었다. 이후 데카르트나 코페르니쿠스도 바로 이 아리스토텔레스 혁명과 더 연결된다. 책 제목대로 서구 기독교는 물론 이슬람을 포함한 현대의 모든 사상은 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 따라서 현재 반목하는 모든 이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아이들’, 즉 한 형제임을 암시한다.

분쟁 해결 전문가인 저자 루빈스타인은 이성과 신앙의 조화를 위한 투쟁사를 통해 암묵적으로는 오늘날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의 이해와 타협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막스 베버와 새뮤얼 헌팅턴 등의 역사의식을 뒤집은 프랑크의 『리오리엔트』가 주로 경제적 측면을 다루었다면, 이 책은 역사적인 측면에서 이 작업을 수행한다. 두 책에서 서구 중심주의는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제임스 레스턴의 『살라딘과 신의 전사들』등이 한국 출판계에서 이슬람 바로 알기를 주도했는데, 이제 이 책은 동서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저자는 잃어버린 역사 회복을 통해 “보다 더 인간적이고 통합적인 미래 세계에 대한 실마리를 발견”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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