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이슈] 서울 중앙버스차로제 두 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장면1=승용차로 경기도 고양시 주엽동에서 서울 충정로로 출퇴근하던 회사원 박기종(39)씨는 지난달부터 버스를 타고 다닌다. 승용차로 한 시간 이상 걸리던 출근길이 45분으로 줄었다. "중앙차로를 씽씽 달리는 버스 안에서 밀려 있는 승용차를 내려다 볼 땐 미안하기도 하지만 통쾌하다"는 게 그의 솔직한 심정이다.

#장면2=버스로 출근하는 회사원 최진호(42.서울 양재동)씨는 아침을 못 먹고 나온 날이면 양재역에서 잠깐 내린다. 빵이나 김밥으로 요기를 하기 위해서다. 식사 후 다시 버스를 타도 최씨의 교통카드에 찍히는 요금은 '0'. 30분간의 무료 환승 시간은 최씨에게 식사시간이다.

#장면3=종로에 내린 이지혜(23.상명대 무용4)씨는 한개 노선 밖에 없는 학교행 버스를 무작정 기다리지 않는다. 대신 교보문고행 버스를 우선 탄다.

교보문고 앞에서는 학교로 가는 노선버스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이처럼 목적지로 빨리 가기 위해 버스를 옮겨타는 '무료 환승족'은 7월 이후 등장한 서울의 '교통 신인류'다.

▶ 중앙버스전용차로제를 실시하는 서울 강남대로의 10일 오전 모습. 붉은색 중앙버스전용차로가 시원하게 뚫린 가운데 일반 차로도 비교적 원활하게 소통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지난 7월 1일 시작된 서울시내 대중교통 개편이 두달여 만에 조금씩 뿌리를 내리고 있다. 요금단말기 고장과 바뀐 노선에 대한 시비는 여전하지만 시민들은 차츰 새 교통체계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특히 시민들이 체감하는 변화는 중앙버스전용차로제다. 차로 한가운데에 붉은 포장을 하고 버스만 달리도록 하는 중앙차로제는 '택시보다 빠른 버스''안전한 버스'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본지 취재팀이 확인한 결과 올해 시행된 3개 중앙버스전용차로에서는 모두 버스가 택시보다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교통사고도 줄었다.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의 조사 결과 지난해 7월 한달간 버스 대인.대물사고는 553건. 하지만 올 7월에는 363건으로 35%가 줄었다.

이에 따라 이용객도 늘어 대중교통의 경우 지난해 8월 665만7000명에서 올 8월 765만9000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단체들은 이례적으로 서울시의 새 교통 정책을 지지하는 성명을 내놨다.

경실련 도시개혁센터.녹색교통운동.녹색도시연구소는 지난달 24일 중앙차로제 확대 실시, 굴절버스 등 차량 고급화, 경기도와 환승체계 구축 등을 요구했다.

이 같은 새 교통체계는 교통난으로 고민 중인 외국에서도 관심사다. 이미 모스크바와 일본.칠레.과테말라가 관계자를 파견했거나 할 방침인데 이어 세계대중교통협회(UITP)는 10월 호주 브리즈번에서 국제 세미나를 열고 '서울 버스체계 개편 성과'를 주요 주제로 다룬다.

올림픽을 앞둔 중국은 가장 적극적이다. 베이징은 서울시 교통체계의 장점을 도입하기 위해 10월 대규모 조사단을 파견할 예정이다. 특히 중국 정부는 2006년까지 베이징 시내 300km 구간에서 중앙차로제를 시행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서울시는 4곳 35km구간에서 시행 중인 중앙차로제를 내년 이후 13곳 170km로 확대할 예정이다.

정형모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