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cm 큰 하승진 면전에서 덩크 꽂은 이승준 “꼭 한번 찍어보고 싶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그저 점수로만 상대를 누르는 게 아니다. 면전에서 직접 찍어누른다. 더 짜릿할 수밖에 없다.

농구의 재미를 더하는 장면이 있다. 상대의 슛을 배구 스파이크 하듯 쳐내는 블록, 그리고 수비를 앞에 두고 꽂아 넣는 ‘인유어페이스 덩크’다.

지난 14일 열린 삼성과 KCC의 경기에서는 삼성 이승준(31·2m4㎝)이 KCC 센터 하승진(24·2m21㎝)을 앞에 두고 그대로 공을 림에 내려꽂았다. 인유어페이스 덩크, 말 그대로 수비의 얼굴을 마주보면서 넣는 덩크슛이다. 이를 허용한 수비수는 단순히 2점을 내준 것 이상의 굴욕감을 느끼게 된다.

18일 동부와 SK의 경기에서는 동부 김주성(30·2m5㎝)이 2블록을 보태며 프로농구 사상 처음으로 700블록 고지에 올랐다.

김주성의 통산 700번째 블록은 SK의 ‘고무공 포워드’ 김민수의 슛을 찍어낸 것이었다.

◆센터의 굴욕? 재미는 두 배=탄력이 좋은 혼혈 포워드 이승준은 KCC전에서 자신보다 키가 17㎝나 더 큰 하승진의 면전에서 뛰어오르더니 찍어누르듯 덩크를 꽂았다. 이승준은 경기 후 “프로농구 최장신 하승진을 꼭 한번 찍어보고 싶었다”며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과거 화제를 모았던 인유어페이스 덩크의 주인공은 김성철(KT&G)이다. 그는 2005~2006 시즌 서장훈(당시 삼성)을 상대로 인유어페이스 덩크를 성공시켰다. 당시 코뼈가 부러져 마스크를 쓰고 뛰었던 김성철은 골밑에 서장훈이 버티고 있는데도 과감하게 달려들어 덩크를 꽂아넣었다. 김성철은 “마음먹고 인유어페이스를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덩크슛은 성공하고 나면 늘 통쾌하다”고 말했다.

인유어페이스 덩크가 나오면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아오른다. 김성철은 “덩크는 성공하면 분위기 전환이 된다. 흥을 돋우기 위해 시도한다”고 말했다. 물론 단점도 있다. 수비를 달고 뛰어오르는 인유어페이스 덩크슛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유재학 모비스 감독은 ‘아트 덩커’ 김효범이 무리한 덩크슛을 시도하면 가차 없이 교체해 버리곤 한다.

◆상대팀 혼 빼놓는 파리채 블록=김주성은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두 차례(2003~2004시즌, 2007~2008시즌) 블록왕에 올랐던 ‘블록의 달인’이다. 김주성은 가장 기억에 남는 ‘블로커’로 2002~2003 시즌 챔프전에서 맞대결했던 마커스 힉스(당시 오리온스)를 꼽았다. 힉스는 블록을 포함한 트리플더블을 달성한 적도 있다. 힉스의 가공할 블록에 당했던 선수들은 “파리채 같은 블록에 찍히고 나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골밑에 들어가기가 무서울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힉스가 고무공 같은 탄력으로 뛰어올라 배구 스파이크를 하듯 무시무시한 기세로 블록을 해냈다면, 김주성은 화려하기보다 타이밍을 잘 맞춰서 팀에 도움이 되는 블록을 하는 데 주력한다.

김주성은 “세게 쳐내면 기분은 좋을지 모르지만, 공이 밖으로 튀어버리면 공격권은 뺏지 못한다. 살짝 치더라도 공격권을 가져오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주성이 “나보다 더 블록을 잘하는 선수”라고 꼽은 팀 후배 윤호영은 “타이밍으로 승부하는 블록이 덩크보다 더 짜릿하다”고 했다.

이은경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