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삼칼럼] 남은 3년의 DJ 과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서민층의 깊은 소외감, 정치개혁의 지지부진과 여전한 부패, 점증하는 편중인사에 관한 불만 등등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소리는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국정운영능력 전반에 관한 평가는 여론조사 때마다 60%를 훨씬 웃돌고 있다.

하도 무능한 대통령을 많이 겪었기 때문인가. 어쨌든 金대통령으로서는 이 높은 지지율만은 자부해도 좋을 것이다.

金대통령은 지난해 연말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좌절하느냐 비약하느냐는 내년에 정치가 안정되느냐 안되느냐에 달렸다" 고 말한 바 있다.

金대통령이 제시한 기준에서 보자면 앞날은 비관스럽기 짝이 없다.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으로 정치에 대한 기대가 모처럼 살아나는가 했는데 여전한 밀실공천에다 공천발표후의 아수라장까지 겪고 나니 국민의 입맛이 다시 싹 가시고 말았다.

대수술밖에는 길이 없는 암환자를 물색없이 침 몇대 놓아서 다스리려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민망함을 금할 수 없다.

현재 되어가는 꼴을 보면 총선후라고 해서 정국이 안정될 것 같지는 않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분열이 심해져 누가 어찌해 볼 수도 없이 정치는 앞으로 내내 이제까지보다 이 사회에 더 큰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렇고 보면 김대중 대통령이 남은 3년 임기동안에 매달려야 할 부문은 싫든 좋든 경제뿐일 것이다.

金대통령이 다른 여러 부문에서는 적지 않게 불만을 사면서도 국정운영 전반에 관한 능력에 있어서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주된 이유도 경제부문의 치적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2년에 대한 공치사는 오늘로 끝내야 한다. 지난 2년간의 경제시책은 문자 그대로 극약처방이었고 그로 인해 부작용도 엄청났다.

그 부작용을 치유하면서 이제부터는 원대한 경제비전 아래 근본적인 정책을 제시하고 그를 솜씨있게 집행하는 경륜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일부에서는 이제 국회의원 공천도 끝났으니까 선거가 끝나면 金대통령도 서서히 레임덕에 들어갈 것이라고 입방아를 찧고 있다. 이는 성급하고 경망한 관측이겠지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정치권의 생리를 놓고 볼 때 전혀 근거없는 관측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 더 金대통령은 경제에 매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는 지난 해의 잉여재원을 그동안 가장 피해가 컸고 소외됐던 빈곤층에 집중적으로 쓸 것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빈사상태인 국가경제의 소생을 위해 극약처방을 했듯이 그로 인해 역시 빈사상태에 놓인 최저 빈곤층을 위한 긴급대책도 마땅히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 해결책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것이어야 한다. 정부는 현재 중기 경제대책으로 벤처기업의 육성을 강하게 뒤밀고 있다. 세계경제의 흐름이나 우리 경제여건에 비추어 방향은 옳다는데 대체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사이의 정보 활용도의 격차를 더욱 더 넓혀 부익부 빈익빈현상을 국가시책으로 조장하는 뜻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있다.

역시 가장 좋은 방법은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일이다. 장년층 이상은 이미 늦었다 하겠지만 어린이나 젊은이는 경우가 다르다.

클린턴 정부 초기에 노동장관을 지냈던 하버드대 교수 출신의 로버트 라이시는 '국가의 일' (남경우외 옮김.까치)에서 새로운 글로벌 경제가 사람들을 부자와 가난뱅이로 양극화하는 것을 억제하는 대응방안으로 두가지를 꼽았다.

그 첫째가 누진적 소득세의 강화이며 둘째가 어떠한 어린이라도 재능만 있다면 가족의 소득이나 인종에 관계없이 창조적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보장해줌으로써 계급간 이동을 촉진시켜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최대의 관건은 비용이 많이 드는 이 해결책에 대한 '정치적 결단' 이라고 지적했다.

정보강국의 건설로 경제의 돌파구를 연다는 발상은 좋지만 현재처럼 빈부의 격차가 벌어져서는 정보화가 도리어 갈등을 심화하는 국가적 재앙이 될 수 있다. 정치적 명예를 건, 남은 3년을 위한 새 경제구상이 그래서 절실히 기다려진다.

유승삼 <중앙m&b 대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