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2009 인구보고서 - 온난화 고통 더 심한 빈국 여성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7면

인도 서부 도시 아마다바드 인근 카라그호다 마을에서 한 여성이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유엔인구기금(UNFPA)은 18일 발표한 세계인구현황 보고서의 주제는 ‘여성, 인구 및 기후’다. 보고서에 따르면 홍수·폭풍 등의 재해는 2000년 이후에 집중돼 있다. 1880~2008년 가장 따뜻한 해 ‘톱 10’은 1997년 이후에 몰려 있다. 이러한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은 계층은 빈곤국가의 여성들이다. 이들의 삶을 고단하게 하고 사회적 지위를 떨어뜨린다.

필리핀에 사는 트리니다드 도밍고(여)는 매년 벼 수확기가 되면 걱정이 태산이다. 태풍이 늘어 수확량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도밍고는 “소출을 늘리기 위해 빌린 1250달러(약 144만원)를 갚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투자금은 필리핀 국민 한 명의 연간 소득과 맞먹는다. 이 지역은 기후변화로 매년 강수량도 늘고 있다. 그녀는 “집중호우를 피하기 위해 6월 말이나 7월 초에 볍씨를 뿌린다”고 말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여성들이 전 세계 식량의 절반을 생산한다. 개도국 여성들은 60~80%를 담당한다. 베냉이나 짐바브웨는 여성이 70%를 책임진다. 그렇지만 전 세계적으로 여성이 소유한 토지는 15%에 지나지 않는다. 빈곤국가의 여성들은 살기 위해 가족들을 돌보고, 먹기 위해 농사일을 해야만 하는 이중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과 변덕스러운 호우 때문에 여성들이 식량과 식수를 확보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유엔기후변화대처협약(UNFCC) 사무국은 지난해 12월 폴란드 포즈난에서 개최된 제14차 당사국 회의에서 “기후변화가 남성과 여성에게 다르게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개도국 여성들은 출산과 양육에다 기후변화라는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중앙아메리카 유카탄 반도의 벨리즈에 사는 아니타 카노(20·여)는 다이빙 회사의 접수대에서 근무한다. 그녀는 “국민 90%가 바다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지만 언제 직업을 잃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해수 온도 상승과 잦은 허리케인 때문에 산호들이 죽고 있고 올해 관광객들이 5년 전에 비해 60% 줄었다. 한 다이빙 회사는 올해 4명의 직원을 해고했고 보트 10척을 팔았다.


전염병 확산도 여성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남성보다 여성들이 훨씬 많이 에이즈에 걸린다. 말라리아 모기가 기승을 부리면서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의 임신 여성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 말라리아는 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제1의 질병이다.

또 설사에 걸리는 개도국 어린이들이 2020년까지 5%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들의 간호 책임도 여성들의 몫이다.  

강기헌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