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전망대] 베이징 리펑시리즈 유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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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베이징(北京)에도 정치 유머가 풍부하다.

그만큼 정치적으로 '눌려 있기' 때문이다.

최근 홍콩 언론의 베이징 특파원들이 보내오는 소식에는 베이징 시민들의 정치풍자가 가득하다.

풍자는 '우회의 멋' 에서 나온다.

직접 목표를 치는 법이 없다.

베이징 시민들도 권력의 핵심인 정치국을 겨냥하지 않는다.

한참 에둘러 힘없는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를 친다.

그러나 공명(共鳴)은 '힘있는 저쪽' 에서 울린다.

기자가 물었다.

"다음달 5일 전인대가 열린다. 뭘 기대하는가. " 입성 허름한 노점상이 말한다. " '전인대의 싼서우(三手)' 란 말 들어봤나. 이서우(一手)는 박수치는 손, 얼서우(二手)는 악수하는 손, 싼서우(三手)는 거수하는 손이다. 뭘 기대하겠나. "

어느 싼룬처(三輪車) 운전기사의 답은 달랐다.

"싼자(三假)를 아는가. 거짓 통계, 거짓 신문보도, 그리고 전인대 대표의 거짓 연설이다. "

전인대를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다.

"전인대는 연극무대다. 진짜 의회라고 생각하는 얼간이는 하나도 없다. 당(黨)의 얼굴이며, 외국인을 위한 전시장이다. " (한 실업자)

"전인대가 뭔가. 나는 대표자에게 투표한 일이 없다. 그런데 왠 대표가 3천명씩이나 되는지…. " (한 학생)

"전인대는 당이 뽑는다. 인민이 아니다. (대표자들이)말썽을 일으키면 다음 회기부터는 베이징에 올 수 없다. 그저 조용히 앉아 공짜 호텔과 공짜 만찬, 공짜 여행만 즐기면 그만이다. " (한 기업가)

전인대 대표가 일반인과 접촉하는 일은 드물다.

삼엄한 경비가 펼쳐진 호텔에서 묵고, 특별차량으로 이동하고 관광하기 때문이다.

관광지에서도 일반과 격리된다.

전인대 풍자의 절정은 전인대를 총괄하는 리펑(李鵬)상무위원장에 관한 것이다.

"李위원장이 농촌의 돼지우리를 시찰했다. 인민일보의 사진기자가 돼지들과 나란히 선 李위원장의 모습을 열심히 찍었다. 인민일보 사진편집자는 이 사진에 '돼지들과 리펑' 이란 제목을 붙여 李위원장 비서에게 보냈다. 사전 검열을 위해서다. 그 비서는 제목을 '리펑과 돼지들' 로 바꿔 李위원장에게 결재를 올렸다. 그러나 다음날 신문을 집어든 비서는 사진 설명을 보고 대경실색했다. '왼쪽에서 네번째가 리펑' 으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

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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